잠결에 호흡곤란이 느껴져 눈을 뜨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불이야』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순간 여러 객실에 잠들었을 제자들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용수철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가건물에 불이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맞은 편 301호실 문틈으로 검은 연기가 새나와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문을 열어 젖히니 유독가스와 뜨거운 기운이 얼굴을 덮쳤다. 『얘들아 일어나, 불났다』 닥치는 대로 잠든 아이들을 걷어차고 손에 잡히는 대로 끌어 일으켜 아래층으로 내몰았다. 옷깃으로 코를 막고 정신 없이 이방 저방 다니며 아이들을 깨워 끌어내기를 30분여, 자기 반 아이들 40여명을 탈출시키기에 성공했다. 구출작업중 다리를 다쳐 활동이 불편했지만, 남은 아이들이 있을 것같아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6월 30일 화성군 씨랜드 화재참사 때 순직한 고 김영재(金永在·38·경기 마도초등학교) 교사의 마지막이다.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몸을 던져 42명을 구해낸 그의 유족이 지난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로써 그의 이름은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그 의로운 죽음이 이렇게 허무하게 잊혀져도 되는 것인가.
교육부는 김교사 순직후 교감으로 특별승진시켜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로 등록했고, 보건복지부는 그를 의사자로 결정하기 위해 심사중이다. 의사자 결정이 나면 유족들에게 얼마간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민간에서는 한국교육신문과 씨알의교육연구회 공동으로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김영재 교육상」 제정 등 기념사업을 구상중이다. 훈장과 유족보상, 민간의 추모사업으로 그의 죽음은 충분한 값을 한 것일까. 이 물음에 고개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교사 같은 의인이 한사람만 더 있었어도 우리 애들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이 화제가 됐을 때 희생자 유가족 사이에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인솔교사들이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허망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탄식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의인을 기다리기 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김교사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수십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그 사건은 중하위직 공직자 몇사람 구속으로 책임문제가 매듭지워 졌다. 그리고 그것 보란듯이 4개월여 만에 더 끔찍한 화재가 일어났다. 인천 라이브2 호프집 화재현장은 김교사 같은 의인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 없었을 연옥 그 자체였다. 불 난 사실을 알고도 업주는 술값 받을 욕심에 출입문을 잠궈버렸다. 큰길로 면한 벽면에 보통 유리창이 있었다면 깨고 뛰어내릴텐데, 두꺼운 통유리로 막혀있어 탈출이 봉쇄됐다. 아이들을 밀실에 가두어 놓고 불을 낸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잠적했던 업주가 자수해 관련 공무원 수십명에게 뇌물을 줬다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담당 공무원 몇사람과만 결탁한 줄 알았던 우리는 결재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조금만 관련이 있어도 뇌물과 향응을 주고받은 구조적 비리의 실상에 분노할 기력도 잃었다.
단속책임이 있는 경찰간부는 업주의 집에 공짜로 살고, 관할파출소는 그 업소의 불법영업 고발 신고를 번번이 「불발견」「사실무근」으로 처리했다. 구청 직원은 업주 소유 점포를 무상임대해 장사를 했다.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가는 하키선수가 부럽다』는 말이 호들갑으로 들리지 않는다. 참다못한 유족들은 정부가 나서라며 가두시위를 했다.
그래서 겨우 힘 못쓰던 경찰청장 한 사람 경질로 끝내려 하니 지하의 김교사가 어떻게 눈을 감을 것인가.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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