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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다시쓴다] (45) 대하소설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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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다시쓴다] (45) 대하소설 붐

입력
1999.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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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근대문학사사실 우리 근대문학사는 지금까지 10년 단위로 끊어 서술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었다. 이 방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갖지 않은 그야말로 형식적 산술치에 의한 구분법이다. 그런데 뒤집어 놓고 보면 이런 자의적 구분법이 무의식적으로 통용되는 데 우리 문학사의 특징이 있다. 바로 10년 단위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 사건들은 대부분 외적인 힘에 의해 강제되고 갑작스레 주어지기도 하는 등 단절적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 근대사가 정상적인 역사를 밟아오지 못하고 파행적으로 전개되어왔던 탓이다.

자연 우리문학의 표정도 그때그때 주어진 역사의 충격에 따라 달라졌다. 문학사에서 알게 모르게 신인 중심, 그때그때 시대 현실과의 연관성을 문학사 서술의 잣대로 즐겨 사용하게 된데도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 인간과 시대의 총체적 조명-대하소설

그렇기 때문에 조각난 시대를 관통하여 전체로 묶는 작업은 우리 역사가 안으로 요구하는 절박한 과제였다. 그런데 그 과제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양식이 바로 대하소설이었다. 그런 대하소설이 70년대 들어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69년부터 연재에 들어가 4반세기 만에 완간된 박경리의 「토지」, 74년부터 84년까지 10년여에 걸쳐 완성된 황석영의 「장길산」, 그외에 「객주」 등은 모두 70년대와 잉태를 같이 한다. 그리고 그 자산 위에서 대하소설의 대중적 영광이란 신화를 만들어낸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80년대를 가로지르고 있다. 대하소설이란 등장인물이 매우 복잡다단하고 또 사건이 연면히 계속돼 마치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 소설은 대개 유장한 시간의 흐름과 많은 인물들에 의해 복잡다단하게 얼크러진 사건의 제시를 통해 사회의 변화상과 인간 삶에 대한 총체적 조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대에 걸친 오랜 기간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서술상 완만한 속도를 가지면서 이야기의 서두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순차적 계기성에 의해 사건이 제시되는 기법적 특성을 가진다. 독자들이 알게 모르게 대하소설을 찾게 된데는 이렇듯 난해하고 모순에 가득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급격한 삶의 변화와 전통적 질서의 붕괴에 따른 정체성의 혼돈을 위무 받으려는 갈망을 가장 편하게 눈앞의 현실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와의 결합이 강했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승리와 패배, 억압과 반항의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도 나아가 분단과 전쟁 이후 왜곡된 체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숙한 민족역량이 거기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 진보운동의 집단적 초상-황석영의 「장길산」

그점에서 「장길산」은 시대와의 함수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길산」은 우리가 잘 아는 장산곶매 전설로부터 시작된다. 아마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마을을 구하는 수호신으로서 장산곶매가 수리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처절한 장면을 누구나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이 장산곶매야말로 뱀의 먹이가 되어 스스로 수많은 생명을 양산하는 두꺼비와 함께 70년대의 상징적 부적이었다. 그것은 황석영의 「객지」 속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와 함께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온몸으로 가자/허공뚫고 몸으로 가자/가서는 돌아오지 말자/박혀서/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는 고은의 시 「화살」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장길산」은 문학평론가 최원식의 말대로 70년대 남한 진보운동의 집단적 초상, 바로 우리들의 얼굴이었다. 『광대 도적에서 조숙한 혁명가로 발전한 장길산이 어디로 갈 것인가? 풍문 속에서만 요괴로 떠도는 가엾은 목숨! 왜 이런 결말에 이르렀을까? 우리는 장길산이 저 암울했던 군사 독재 시대에 남한 진보운동의 희망의 가락 또는 해방의 부호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70년대에 광대 도적에서 혁명가로 발전한 장길산이 80년대 관념 속의 요괴로 떨어지게 된 배후에, 신군부의 등장 속에 전민중적 희망이 참담하게 암살되었던 1980년의 집단적 추억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집단창작의 성격도 띠고 있다. 실학연구를 비롯한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역사학계의 성과, 이른바 민중·민족 사관에 기초한 역사의 재해석 작업과 민족문화의 각종 산물에 대한 복원, 민족문학론, 민중문학론, 리얼리즘론 등의 전진과 함께 한 행보였던 셈이다. 역사 속에 묻혀있던 천노(賤奴)의 소생인 「장길산」이란 인물을 찾아내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녹림당(綠林黨)을 조직해 지배계층에 대항하는 과정이나,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의 실천력이 전민중의 한계로 지적되곤 했던 「낭만적 영웅상」의 모습은 70년대 운동의 한 얼굴인 것이다.

◆ 민족의 한과 의지-박경리의 「토지」

이에 비해 박경리의 「토지」는 좀 더 문학적, 문화적으로 시대와 접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구한말인 1897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대지주 최씨 가문의 삶을 파란만장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무려 25년에 걸친 산고의 세월 만큼이나 깊은 심층을 더듬고 있다. 어쨌든 「장길산」이 「역사소설」 이란 형식 속에서 시대의 전망을 상상화 했다면, 「토지」는 우리 근대문학사의 한 전통인 「가족사 소설」이란 형식을 새로이 꽃피웠다.

역사소설은 역사를 재구축하고 그것을 상상적으로 재창조하는 허구적 서사유형이다. 따라서 과거 시대의 충실한 재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의 삶을 비추고 전망하는 데 직접적인 의도가 있다.

반면 가족사소설은 가족의 역사를 통하여 시대적 변천과 역사의 변모 양상을 밝혀낸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가족관계가 급격히 와해되고 변모되는 시대적 상황과 결합하여 가족사소설은 이미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그리고 김남천의 「대하」등 일제시대부터 자기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의 것이 대개 한 권으로 그려진 데 비해 무려 16권이라는 양적 대비만으로도 「토지」는 가족사소설의 신기원을 이룩한다.

「영웅적 개인과 집단적 실천」으로 요약되는 「장길산」과 달리, 「토지」는 흔히 식민지적 고통 속에서 일군 「민족의 한과 의지」로 요약된다. 작품 자체가 이렇게 민족 심성의 차원에서 문화사적 범주로 정리되는데서 알 수 있듯이 「토지」는 시대와 직접 결합하지 않는 대신 민족공동체의 생활 양식과 정서 구조로 더 깊이 자맥질해 들어가 민족적 원형질을 재구성한다.

◆ 소설을 통한 역사 바로 보기-조정래의 「태백산맥」

그 점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야말로 80년대와 함께 군무를 춘 시대적 생산물이자 소비물이다. 지금까지 거의 500만부가 팔려 나간 최단기간 최대쇄수 및 최대판매부수가 말해 주듯이 이 작품은 말 그대로 「태백산맥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집단심성이라 부를만한 80년대적 사회심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80년대는 계급적·민족적 시각의 복원을 통해 노동운동·통일운동에서 보듯이 당대 현실과 싸워 나가면서 동시에 왜곡된 역사의 본질을 대대적으로 복원하는 움직임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해전사」라는 약칭으로 하나의 유행을 불러 일으킨 해방전후사에 대한 역사적 관심이 뜨겁게 열기를 뿜어내던 시대였다. 「태백산맥」을 역사소설로 쉽게 규정하지 않는 것도 바로 오늘의 현실에 전사(前史)로서 갖게되는 직접적인 연관성 때문이다. 분단과 전쟁 이후 남한을 지배한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일방적인 시각만을 강요당했던 독자들에게 「태백산맥」은 말그대로 소설을 통한 역사 바로보기의 한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현대사 연구를 앞질러 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태백산맥」은 역사적 구체성과 문학적 형상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일제시대의 사회주의 운동과 해방공간의 좌익운동 이후 근 40년 만에 좌파적 담론과 운동이 되살아난 시대와 가장 행복하게 만난 소설이 된 것이다.

이처럼 대하소설은 소설이란 그릇으로 삶과 시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양식이다. 거기 구체적인 개별인물과 역사와 시대가 파란만장하게 어우러져 운명과 풍속, 심성과 행동양식 등 한시대의 영욕과 민족사의 혈맥이 숨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약력

임규찬 성공회대 교약학부 교수

57년 전남 보성 출생

83년 성균관대 독문학과 졸업

94년 성균관대 국문학과 박사

저서: 「왔던 길, 가는 길 사이에서」(창작과 비평, 97년) 「한국 근대소설의 이념과 체계」(태학사, 98년)

▲연구자료

「문학과 역사와 인간」(고은, 한길사, 91년)

「역사와 민족의 상상력」(김병익, 예술과 비평, 84년 6월호)

「역사라는 운명극」(염무웅, 창작과 비평, 79년)

「한국소설사」(김윤식 정호웅 공저, 한길사, 93년)

「토지와 박경리 문학」(서정미, 창작과 비평, 80년 여름호)

「토지와 박경리문학」(한국문학연구회 엮음, 솔, 96년)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최원식, 창작과 비평, 97년)

현대사 시리즈는 금주부터 월요일자에 게재됩니다. 다음은 22일자에 「88서울 올림픽」편이 나갑니다.

■대하소설의 영상화

1999/11/14(일) 16:51

대하소설은 TV드라마나 영화의 주요 원작으로 자주 활용된다. 탄탄한 서사적 구조에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펼쳐내는 삶은 역동적이고 극적이어서 영상화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원작의 인기는 TV드라마나 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확실한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늘 방송사가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최근 SBS는 황석영(黃晳暎)의 「장길산」 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준비작업중이다. 원작자 황석영과 이미 드라마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간 SBS는 제작비와 북한에서의 촬영 문제만 해결되면 즉시 드라마화 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KBS는 이문열(李文烈)의 「변경」을 드라마로 만드는 계획을 요즘 검토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대하소설로 꼽히는 박경리(朴景利) 「토지」와 조정래(趙廷來)의 「태백산맥」은 각각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돼 방영됐다.

대하소설의 영상화 작업은 이처럼 대체로 높은 시청률을 보이지만 때론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고, 원작 훼손 등 문제점을 야기하기도 한다.

TV드라마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대하소설의 드라마작업은 「토지」라고 할 수 있다. 흑백 TV시절인 79년과 컬러방송시대인 87년 두차례 KBS 대하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토지」는 원작자 박경리의 작품의도를 그대로 살려 거의 원형대로 드라마화했다는 점에서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대하소설의 드라마화는 스타제조에도 일조했다. 79년 토지의 주인공 서희역을 맡았던 탤런트 한혜숙이나, 87년 신인에 불과했던 최수지가 시청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기도 된 것도 모두 드라마 토지의 성공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모든 대하소설 원작 영화가 성공을 거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참패로 끝난 대표적 경우. 광복부터 6·25까지 좌·우익의 대립을 통해 휴머니즘을 추구해보겠다는 임권택(林權澤)감독의 의도는 실종됐다. 심지어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우익단체들의 협박편지가 쇄도하는등 이념논쟁까지 초래했다. 우여곡절끝에 개봉된 「태백산맥」은 원작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상당부분 훼손됐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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