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결혼초부터 말대꾸한다면서 뺨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목욕탕 욕조물에 얼굴을 강제로 쳐넣어 고통을 주는 정도로까지 심해졌고 큰딸도 마구 때린다. 친정, 시댁 모두 잘 사는데 남편만 인생의 낙오자라는 열등감을 갖는 것 같다. 친정에 누가 될까봐 이제까지는 쉬쉬했는데 어차피 이혼을 해야 할 것 같다』(초등학교 1학년과 7살의 두 딸을 둔 37세의 A부인)『남편은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나는 양장 수선업을 한다. 결혼 초부터 밥상을 뒤엎기도 하고 뺨을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하고 했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지내려니 하고 참고 살았다. 요즘에는 의처증까지 합쳐져 옷 수선하고 실밥이라도 묻어있으면 「어떤 놈과 정신없이 놀다와서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왔냐」며 때린다. 가톨릭신자라 이혼은 못할 것 같다』(47세된 B부인)
최근에 여성의전화 쉼터를 찾아온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두가지 사례다. 한국사회의 가정폭력과 남녀차별의 문제는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인권이사회는 「주요관심분야와 권고사항」에서 호주제와 태아성감별, 가정폭력, 고용에서의 심각한 여성차별 등 한국에서의 여성인권 침해사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촉구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결혼기간중 뺨 한 대라도 맞은 적이 있는 여성의 비율은 대략 2명중 1명에 이른다. 92년에 실시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주일에 한 번 이상 남편의 상습적 구타를 경험하는 여성들은 10.1%, 즉 10명중 1명꼴로 나타났다.
여성의전화가 83년 창립된 이래 전국에서 가정폭력, 성폭력등의 상담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던 것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사생활로 치부되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는 「내 마누라 내 마음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냐」 또는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라는 식의 잘못된 의식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였다.
이에 대한 제도적 대책마련을 위해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을 주도하였고, 그 결과 두 개의 법, 즉 가정폭력의 처벌에 관한 법과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이 98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다. 이 법에 의해 이제는 가정폭력도 사회적 범죄로 인지되고 폭력남편이 여러 가정보호처분을 통해 폭력적 행동을 교정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법을 만들었어도 상담은 더 늘고 폭력은 별로 줄어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의식의 문제이다. 경찰은 가정폭력 신고를 받으면 의무적으로 출동하게 되어 있는데도 제대로 출동하지 않고 또 출동했다 하더라도 일부 경찰관들은 가해자를 연행하여 조사하는 대신 문이 잠겼다고 그냥 돌아가 버리거나 여전히 「부부간에 잘 해보라」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한다.
또 법원에서는 「안방접근금지」같은 판결을 내려 가해자는 안방만 빼고 마음대로 집안을 활보하고 피해자는 오히려 안방에 갇히게 되는 식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같은 문제는 실은 우리 사회 전체가 여성인권을 여성문제로 볼 뿐 인권문제로 보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다행히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의 가정폭력 아동학대 태아성감별, 여성이 가정 사회 직장에서 겪는 차별을 본질적으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가령 강간죄에 여성의 저항여부가 증거로 요구된다는 점, 강간범이 피해자와 결혼할 때 면죄부가 된다는 점, 그리고 부부간 강간이 처벌되지 않는 점이나 소기업에 취업한 여성에 대한 보호대책 미비 등은 국제 수준에 비춰 한국사회가 아직 인권보호에서 부족한 측면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갖춰지려면 가해자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권리의식이 먼저 필요하다.
/신혜수·한국여성의전화연합 회장·한일장신대 교수·여성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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