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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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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

입력
1999.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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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끝난 사랑의 대상인 남자.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떠나버려 더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옛 약혼자. 한 남자에 대한 이런 기억을 가진 두 여자의 이야기가 과연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작은 감성에 충실한 감독의 역량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이미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비디오 테이프로 유통된 「불법 복사 베스트셀러」인 이와이 순지(岩井俊二)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가 20일 개봉한다. 신세대들에게 러브레터는 몇번씩이고 반복해서 보아온 젊은 문화의 상징이다. 「오 겡끼데쓰까」는 유행어가 됐고, 우리나라 CF에서도 정지한 자전거 바퀴를 돌려 시험지를 읽는 장면을 베껴 사용할 만큼 문화적 상징이 됐다.

순지 감독은 스스로 『남성들의 삶을 보는 것보다는 여성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영화는 여성취향적이다. 순지의 「순정 만화」 는 스스로를 「작가주의」 감독이 아닌 「엔터테이너」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손끝에서 섬세하게 살아난다.

「오 겡끼 데스까(잘 있나요)」 그의 섬세함을 표현하는 기법 중 하나이다. 죽은 옛 애인의 중학교 졸업앨범에 적힌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히로코의 첫말은 「잘 있나요」. 답장을 바라지않는 그녀만의 일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잘 있나요」는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뜻. 히로코가 새로운 사랑을 결심하고 산에 올라 또다시 묻는 「잘 있나요」는 「이제 당신을 잊기로 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법하다.

영화는 중학시절 동명의 여학생 이츠키가 히로코에게 들려주는 후지이 이츠키에 대한 삽화가 대부분이다. 소년 이츠키와 청년 이츠키에 대한 단절적 기억을 가진 두 여자는 서신을 통해 그들 기억 속의 후지이 이츠키를 완성해 간다. 남성을 매개로 한 여성의 소통, 그러나 이것이 결국은 각자 사랑의 「완결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지극히 멜로적이다.

서정은 유머를 양념으로 더욱 감칠 맛 난다. 후지이를 짝사랑하는 소녀 사나에는 가부키 배우같고, 아버지 상을 치른 소녀를 찾아온 소년은 「삼가조의를 표합니다」라고 깍듯이 인사말을 건넨다. 그 어색함은 소년적이다. 자전거로 불빛을 발전(發電)해 시험지를 읽는 대목 등 「작은 감성」에 민감한 감독의 역량이 발휘됐다. 히로코와 이츠키는 가수이자 배우인 아카야마 미호의 1인2역인데 이 방식은 극의 몽환적 분위기를 북돋우는 데 일조했다. 기발한 발상도, 기발한 내러티브도 없는 멜로 영화지만 깔끔한 일본식 도시락처럼 다양한 맛을 보여준다. 정찬이 아닌 도시락만으로 이런 열광적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일본 영화의 저력이다. 오락성 ★★★☆ 예술성★★★☆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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