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상태의 나라살림을 빨리 흑자로 바꿔야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에도 불구, 당정의 재정건전화 의지는 뒷걸음질치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11일 당정회의 및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잇따라 열어 재정건전화 특별조치법을 올 정기국회에 상정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정악화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는 추경편성 규제조건이 당초 시안보다 느슨해져 자칫 법안 자체가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변질될 우려를 낳고 있다.
재정건전화 특별법 용역을 맡았던 조세연구원 시안(사실상의 정부안)은 추경편성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실업악화 자연재해 심각한 대외여건변화등 3가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추경을 허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날 당정 및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합의된 법안에는 추경허용목적에 「서민생활보호」항목이 추가됐다. 「대외여건변화」도 「대내외 여건변화」로 슬그머니 수정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적자감축이 중요하더라도 재정 본연의 기능을 훼손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서민생활보호를 위한 추경은 허용키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경우 추경편성이 과거처럼 사실상 제약없이 아무때나 편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금년만 하더라도 두차례 추경중 1차 추경은 실업대책, 2차 추경은 생산적 복지(서민생활보호) 용도로 편성된 것으로, 재정감축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에도 이런 식의 추경은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짤 수 있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당연히 지양되어야 할 경기부양성, 선심성 추경이 「실업자를 위해」「서민생활을 보호키 위해」「대내외 경제여건변화에 대응키 위해」란 그럴듯한 포장으로 얼마든지 남발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이같은 법안의 굴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손발(예산편성권)을 묶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당정회의에서 추경편성요건을 놓고 당측이 강력히 반발, 법안 자체가 보류될 뻔 했고 이 때문에 관련 보도자료가 배포→회수→재배포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