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의 궁전인 「고쿄(皇居)」앞에는 대부분 잔디로 덮인 넓은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의 명물은 뭐니뭐니 해도 잔디밭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서있는 곰솔이다. 하늘로 뻗기를 서둘지않아 이리저리 굽은채 잎이 다북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선 모습이 여간 멋스럽지않다.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사당내에 있는 곰솔과 비슷한 귀한 품종으로 약 2,000그루가 심어져 있고 개중에는 수령 100년을 넘은 것도 많다. 최근 새로 심은 40년짜리가 한 그루에 100만엔을 넘는다.전담 관리사무소를 두고 일일이 번호를 매겨 이 곰솔을 관리하고 있는 환경청이 요즘 고민에 빠져있다.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즉위 10주년인 12일 「고쿄」앞 광장에서 열리는 「국민제전」때문이다. 공식 기념식과는 별도로 열리는 이 제전에는 일본의 인기그룹 「GLAY」와 「SPEED」,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惠)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5만명의 참가자와 함께 자신들의 히트곡과 함께 「기미가요(君ガ代)」를 부를 예정이다. 그래도 워낙 인기가 대단한 존재여서 참가자의 열광은 불을 보듯 뻔하다.
흥분한 참가자들이 이들 인기인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할 경우 그동안 곰솔에 기울인 정성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곰솔때문에 천황의 즉위기념 제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상 복원 등 몇가지 조건을 붙여 제전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결국 어느 정도의 손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환경청의 고민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이 곰솔뿐일까. 「GLAY」나 아무로와 함께 「기미가요」를 제창하면서 참가자들은 각별한 감회에 젖을 것이다. 이런 감회가 제전의 열기를 타고 고조될 경우 지난 50여년간 일본 국민이 나름대로 기울여온 역사 반성의 노력을 단번에 무(無)로 되돌리는 열병이 될 수도 있다. 곰솔은 다시 옮겨심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구르기 시작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커다란 고통과 희생없이는 멈추기 어렵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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