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한국21」(BK21) 사업 과학기술 9개분야를 석권한 서울대는 앞으로 4년간 학부정원을 25% 감축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들은 『서울대가 정원감축 등 입시제도개선 약속을 어기면 지원을 철회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고 얼버무리기 일쑤다. 교육부조차 서울대가 약속을 이행할 지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다.이처럼 당면한 입시제도 개혁부터 제대로 이룰 수 있을 지 의문일 정도로 BK21 사업의 현주소는 말이 아니다. 각 대학이 이렇다 할 제도개선사항을 제시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정원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입시를 과열시키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BK21 입안에 관여한 한 교육부 간부는 『BK21에서는 당초 의도했던 입시제도개선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의 꿈도 실현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려대 C교수는 『잘못된 기준에 따라 지원대상을 선정, 2,000억원씩을 몰아준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교육부가 교수평가제와 연봉제 도입 모교 출신 교수 채용비율 하향조정 등 경쟁과 효율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하려던 대학 제도개혁은 일부 교수들의 반발에 밀려 좌초했다. 당연히 학계에서는 『1조4,000억원 투입, 소수선택 집중지원이라는 총론 외에 각론은 문제투성이』라며 전면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① 서울대에 시설건립비로 매년 지원하는 500억원을 철회하라 ② 인문·사회분야는 소수선택 집중지원 원칙에 어긋나므로 다른 사업을 통해 지원하라 ③ 지원기간을 7년이 아닌 2∼3년으로 줄이고 이후 지원대상을 새로 모집·선정하라 ④ 지원사업단 수도 분야별 5∼7개씩으로 늘려 진정한 경쟁을 시켜라 ⑤ 2∼3년 안에 국내외 연구소, 컨설팅회사들에 BK21 기본계획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겨 이를 토대로 사업방향과 기준을 새로 짜라 등등.
선우명호(鮮宇明鎬) 한양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기술발전이 분초를 다투는 세상에 한번 선정됐다고 두세개 대학에 7년간 모든 재원을 몰아주는 바보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교수 수가 적은 대학은 아무리 연구력이 뛰어나도 응모조차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연구력을 인정받아 세계적 통신·반도체업체인 모토롤라와 55만달러(6억6,000만원)짜리 프로젝트계약을 맺었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BK21 사업에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
교육부는 『여러 문제점을 모르지 않지만 BK21 사업이 「국민의 정부」 100대 정책과제로 돼 있어 이미 발표된 스케줄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BK21은 1조4,000억원의 혈세를 털어 새 밀레니엄을 담당할 인재를 기르자는 사업이다. 잘못을 알면서도 일정표에 얽매여 계속 잘못을 되풀이하는 짓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은 일이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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