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석주를 살려보고 계속 싸워야죠』철거민 지역인 서울 종로구 숭인동 「궁안마을」 주민들은 10월7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빈민 생존권 요구 삭발농성」을 시작했다. 「궁안마을」은 조선시대 왕실별장터였다가 6·25이후 피란민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소유권을 둘러싼 끊임없는 법적분쟁을 야기해 온 곳. 98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은 땅 소유자가 올 7월 강제 철거를 시도, 100여가구 철거민들은 갈 곳을 잃은 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고 현재는 30여가구 100여명만이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소유주와 대치상태에 놓여있다.
격해질 대로 격해진 철거민들의 농성이 갑자기 중단된 것은 마을주민 이해원(李海遠·28)씨의 딱한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이씨의 두살배기 아들 석주(昔柱)군이 우심방과 좌심방의 위치가 바뀐 상태에서 피가 역류하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것. 서울 청계천 8가에서 노점상을 하는 이씨 부부의 한달 수입은 80여만원선. 그동안 지불한 치료비만 1,000만원이 넘었고 2일 받은 수술비 500여만원도 지불할 방법이 없었다.
이씨의 사연을 알게된 궁안마을 철거주민들은 즉각 농성을 중단하고 청량리역, 서울역, 명동성당입구 등지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제발 석주를 살려주세요』 철거민들의 애타는 목소리는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던 농성때보다 훨씬 드높았다. 철거민들의 깊은 뜻에 시민들도 적극 화답, 불과 10일만에 1,000여만원이 모였다.
이같이 모인 금액은 9일 오후 궁안마을 대책위 사무실에서 아버지 이씨에게 전달됐다. 이씨는 『자신들이 살아가기도 어려운 판에 자식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여준 주민들께 정말 감사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을주민 정운재(鄭運載·35)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냈다는 것이 기쁘다』며 『석주도 치료되고 마을문제도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모처럼 밝게 웃었다.
김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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