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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읽기] 햇빛속으로

입력
199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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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원짜리 고급 양주와 1,000원짜리 깡소주. 호화로운 주택의 화려한 거실과 허름한 달동네의 칙칙한 지하방. 등장인물은 아쉽게도 「비교체험 극과극」 의 남희석이 아니다. 차태현, 김현주, 김하늘, 장혁. 잘나가는 이 젊은이 4명이 벌이는 「반항체험 극과극」 「햇빛 속으로」.장안에 화제가 됐던 오락프로 「극과 극」 을 드라마로 옮겨 놓으면 극적 대비가 극적 흥미를 더할 것이란 대담한 발상이었다.

극적대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예 서사구조마저 포기하는 모험도 감행했다. 주인공의 성격과 탄력적으로 작용하며 스토리를 이끄는 의미를 가진 사건이라고는 지금까지 아무 것도 없다. A, B는 비싼 술만 먹고 취해 항상 해롱거리는 부자집 아이. C는 못살지만 오토바이를 잘타는 애, D는 못살아도 공부 잘하는 고아. 이미 잘 준비된 극과극의 무대 위에 이미지의 단순명쾌한 대비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는 「젊은이의 반항」 이란 양념. 반항은 언제나 극으로의 튕김이므로 효과를 증폭시킬 것이란 당연한 발상. 사실 이 또한 매우 모험적인 시도였다. 소설·영화·만화 등 표현 매체 모두에서 「90년대식 젊은이의 반항」은 숱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에 자칫하면 표절·진부·식상이란 지뢰가 터질 것은 뻔한 이치다. 이 지뢰밭을 99년에서야 지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용감했지만, 예상되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오토바이, 술, 서출, 이복동생 등 고답적인 반항의 아이콘을 아무런 재해석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도 정말 가공할 용기다.

성장드라마를 내세웠음에도 성장드라마의 전형을 탈피하는 실험적인 시도도 눈에 띈다. 이제 막 형성된 자의식이 낯선 세상을 향해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성장 드라마라면, 이 드라마는 「우리 집은 왜 이 꼴이냐」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새로운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극적 효과의 선명함을 위해 계획된 이 치밀한 단순함.

놀랍게도 샷 구성에도 이런 원칙이 배여있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을 법한 오토바이 질주씬에서의 얼굴 클로즈업, 전면 샷. 이 두가지 샷의 단순한 반복. 이토록 무미건조한 오토바이 질주씬은 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건, 상징, 캐릭터 등의 극(劇)적인 요소를 죽이면서까지 관철시키고자 한 것은 극(極)적 이미지의 대비다. 처절할 정도의 존경까지 엿보인다. 컬트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 모든 대담무쌍한 시도가 극(劇)과 극(極)의 한자에 대한 혼동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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