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의 안전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됐다. 한달전 월성3호기 중수누설·피폭사고 이후 한전의 사고은폐의혹, 울진1호기 미확인용접부위 폭로, 수소누설등 국민을 불안케 하는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한편에선 아무 것도 아닌 사건을 과장했다고 하고 또 다른 편에선 그런 인식이야말로 안전불감증이라고 탄식한다. 5일 정부의 원전종합안전점검 발표를 계기로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이번 사고로 드러난 원전안전관리의 문제점과 향후 보완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좌담회를 가졌다. /편집자주■ 참석자:이은철(李銀哲)서울대 원자핵공학과교수(원전종합안전점검단 부단장)
김장곤(金莊坤)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장 원(張 元) 녹색연합 사무총장
이상돈(李相敦) 중앙대 법학과(환경법 전공)교수
■ 사회자:배정근 한국일보 생활과학부장
○ 사회자=9월말 일본 도카이무라의 방사능누출사고 직후 10월초 월성3호기 피폭사고등 국내에서도 원전안전사고가 잇달아 국민불안이 증폭됐습니다. 먼저 오늘 정부가 발표한 원전안점점검 결과의 의미를 월성3호기를 현장조사한 이은철교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 이은철=조사결과가 사고원인이 오링의 파손때문은 아닌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오링을 밀어주는 스프링의 강도차이로 밀봉부위의 경사가 져 누설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업절차 미비, 작업자들의 상황판단 미숙, 기기 및 부품결함등이 복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서둘러 사고책임을 밝히고 처벌하는 관행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원인을 규명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 김장곤=사실 이번 사고의 방사선피폭정도에 대해 국민들이 잘 몰라서 더욱 불안해 하고 있는 듯합니다. 방사선은 자연상태에도 늘 어느 정도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피폭량은 기준치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었는데 평소 원전문제에 대한 충분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 이상돈=마침 올해 20주년을 맞는 미국의 TMI 원전사고(79년)의 교훈을 되새겨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엄청난 사고도 작업원들의 판단미스라는 사소한 데서 출발했습니다. 사소한 고장이고 방사선 누출량이 미미하다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91년 미국 컬럼비아대가 TMI 지역주민들을 조사한 결과 방사선에 의한 암발생등은 없었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암발생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제시됐습니다. 그만큼 원전사고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지대하는 것을 정책당국자들이 잘 인식해야 합니다.
○ 사회자=이번 조사결과는 원전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 한 것 같습니다.
○ 장원=그렇습니다. 사고원인을 충분히 조사할 시간이 없었고 환경단체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사안일수록 환경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조사단이 절실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번 같은 조사를 발표해도 국민이 믿지 않습니다.
○ 이은철=사실 저도 급박하게 점검단에 참여해 달라고 통보받았지만 환경단체들이 전혀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오히려 조사에 적극 참여해 의견을 제시해 주어야 했다고 봅니다.
○ 장 원=문제는 사전협의도 없이 언론에 시민단체가 참여한다고 발표한 정부의 일방적 자세입니다. 서로 합의점을 도출하는 방법론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 사회자=처음 사고가 일어났을 때 한전에서 사고자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사고 자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리자의 태도가 바로 문제 아닙니까
○ 이은철=사실 현장에서 보면 사고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누설된 50ℓ의 중수는 고이지도 않을 정도여서 스폰지로 회수했습니다. 그러나 사고의 경중에 대한 판단을 누가 하느냐는 점은 중요합니다. 당시 발전소장에게도 사고를 다음날에야 보고했더군요. 원전운영이 오래되면서 익숙한 작업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또는 안일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이상돈=한전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원전 기술인력을 너무 줄인 것도 사고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하이드로사가 7기의 원전을 폐쇄한 것도 바로 지나친 구조조정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식이면 운전원이 부족해 5~6년내 원전을 문닫을지 모를 판입니다.
○ 장 원=맞습니다. 한전 사람들 스스로도 「정말 위험한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원전이 3D업종이 돼버려 우수한 인재들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정부는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올들어 사고가 크게 늘었습니다. 또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불감증을 생각할 때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사회자=캔두(캐나다 가압중수로)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이은철=지금까지 제시된 캔두형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핵연료를 집어넣는 압력관이 부식에 의해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그동안 조사 기록을 검토한 결과 앞으로 7,8년까지는 별 문제 없을 것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부식이 진행되면 어떤 사고가 발생할 지 몰라 매년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삼중수소의 배출허용치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간 22만큐리로 규정돼 있지만 다소 높습니다. 6만큐리정도로 낮춰야 합니다. 캐나다측이 새롭게 개량해 내놓은 캔두9을 들여온다고 했을 때 제가 반대한 이유는 한번도 시운전해 본 적이 없는 노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험대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 장원=캔두형의 또다른 문제는 핵폭탄의 원료물질을 추출할 가능성입니다. 아직 기술적으론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문제는 국민정서입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가 핵폭탄을 개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50%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국민정서가 이렇다면 우리나라의 평화를 보장해 줄 비핵지대화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 사회자=이번 사고를 계기로 원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제들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오.
○ 이은철=지역주민과 만나면서 위기관리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컨대 실제 피폭된 작업자 2명을 데려다 놓고 「아무 이상이 없지 않느냐」고 하자 대뜸 「1년 뒤에도 아무 문제 없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는 반문이 쏟아졌습니다. 이때 왜 점검단에 의료진 하나 포함돼 있지 않는가 하고 한탄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작업자의 안전의식을 보강하는 것등이 필요합니다
○ 이상돈=원전 규제환경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원전에 대한 규제권한이 궁극적으로 과기부에 있는데 기술진흥임무를 맡고 있는 부처가 규제업무를 겸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미국의 핵규제위원회, 캐나다의 핵안전위원회처럼 독립된 기구가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임기가 보장되는 위원들로 구성된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가 구성되고 안전기술원을 전문조직으로 결합시키는 게 좋습니다. 미 핵규제위원회 위원장은 기술자가 아닌 공공보건 전문가입니다. 국민 안전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해야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이은철=사실 저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이지만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원자력안전에 관한 최고 의결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위원들이 비상근직이고 수족이 없어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겸직이 아닌 상근직 체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또한 돈 문제를 초월할 수 있는 대우와 임기보장이 결정적입니다
○ 장 원=저는 국가, 기업, 비정부기구의 연합이 신뢰확보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국민적 합의 없는 핵발전중심의 장기전력수급계획은 폐기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국민투표도 하구요. 어떤 형식으로든 합의만 된다면 국민이 원전에 대해 불안해 하고 반대하겠습니까. 우리는 수요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그린플랜을 제안합니다. 대체에너지가 당장은 실용성이 없겠죠. 그러나 아무런 전략이 없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필요하면 전기료를 인상해서라도 대체에너지 개발에 투자해야 합니다.
○ 김장곤=물론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장은 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경제성이 없는 등 원전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원전운영은 기술력, 운전능력, 국민이해의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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