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은 수배기간 대부분을 자택에서 은신하며 성경연구서를 비롯, 모두 39권의 책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검 강력부(문효남·文孝男부장검사)는 4일 이같은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검찰은 이씨가 저술한 감성서(感聖書)에서 「형제」의 표현이 구체적으로 자주 나온 것을 확인, 이 「형제」가 이씨를 비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씨를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이씨가 동료 경찰들로부터 도피자금 등을 받았거나 경찰의 묵인이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이씨와 가족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한편 이날 『이씨의 해외도피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혀 국민회의 김근태(金槿泰)부총재에 대한 고문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이씨 퇴직금의 경우 지난 89년3월 부인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신청했었지만 본인이 아니어서 지급이 보류된 뒤 94년 공단기금으로 적립됐다고 설명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고문경험'살려 '경혈책'도 써
이근안씨가 검·경 감시망을 뚫고 10년10개월동안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공안경찰관」으로 축적된 오랜 경험 덕분이었다.
이씨는 수배 직후인 88년 12월부터 한달동안 부인이 마련해준 급전 300만원을 갖고 부산 등으로 기차여행을 다니면서도 한 곳에 이틀이상 머물지 않았다. 복장 역시 짐을 들지 않고 말끔한 양복만 입으며 선글라스나 안대를 착용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89년 1월부터 서울 강남구 일원동 공무원 임대아파트에서 지낸 1년간은 7-10일씩의 기차여행과 3-4일씩의 휴식을 규칙적으로 반복했다. 비용은 이씨가 안방 이불장 밑에 금액과 귀가일시 등을 적은 쪽지를 남겨두면 부인이 이를 보고 돈을 놔두는 「접선」을 통해 마련했다. 수사기관의 감청 등을 우려해 가족과의 전화통화는 일체 삼갔다.
이씨는 기차여행시 경찰 감시가 삼엄한 서울역보다 청량리역을 이용했다. 여행지도 예전에 간첩체포를 위해 잠복근무했던 포항과 울산, 관광인파가 많은 부산·경주 등 대도시, 주민들이 순박한 영주(경북)를 선택했다.
공무원 아파트에서 혼자서 기거하던 90년 1월-90년 7월 이씨는 탁월한 은신술을 발휘했다. 설거지할 때 물소리가 안나도록 싱크대 수도꼭지에 행주를 감아 물을 받았고, 물을 버릴 때도 싱크대 마개를 비스듬히 열어 조금씩 흘렸다. 용변을 본 뒤에는 기다렸다가 위층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릴 때 처리하는 「끈기」를 보였다.
90년 7월이후 이사를 위해 바깥출입이 불가피하자, 이사 전날 가구 등을 미리 옮겨놓고 야음을 틈타 이삿집에 숨어들어가 불을 끈 상태로 지냈다.
이씨는 이처럼 은신하며 90년 1월부터 자택에서 집필에 착수, 8년여동안 성경, 외국어, 컴퓨터, 비디오, 침술 등 5개분야에 39권(5,000쪽 분량)의 책을 써냈다.
이씨는 특히 성경을 10번 이상 읽으며 5년간 매달린 끝에 「감성서(感聖書)」등 성경관련 서적 14권을 작성하는 등 기독교에 심취했다. 검찰은 『이씨가 기독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고 반성하기 위해 종교서적을 썼던 것 같다』고 밝혔다.
또 각종 통증에 대한 치료법을 담은 「수지침연구」3권과 「경혈자료집」1권도 저술, 자신의 고문경험과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씨는 이밖에 영어 일어 등 19권의 외국어 관련 노트를 꼼꼼히 정리, 당시 학생인 막내아들을 가르치는 정성도 보였다. 지난해 4월에는 환갑을 맞아 가족들과 조촐한 회갑연을 갖기도 했다.
박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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