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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바이올린] 300년된 바이올린의 기구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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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바이올린] 300년된 바이올린의 기구한 운명

입력
1999.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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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영화도, 300년 된 바이올린도 할리우드로 가면 사기극이 되고, 단순히 사랑하는 어린 딸을 기쁘게 해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타락한다. 그것이 더구나 5악장의 마지막이라면. 참신한 아이디어, 예술과 시대의 결합, 그리고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은 사라지고 치졸한 상업성에 굴복해버린 씁쓸함만 남는다.「레드 바이올린」은 운명과 역사에 관한 영화다. 역사와 운명은 인간이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16세기 한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올린의 길고 긴운명(300년)을 따라 인간의 비극적 역사도 드러난다. 다분히 중세 주술적인 모티프로 시작해 세계 여러 곳의 역사와 현실을 증언하는 「레드 바이올린」. 저 먼 산 작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인생과 역사를 읽고, 영화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니콜로 부조티란 바이올린 장인이 있었다. 그는 태어날 아들을 위해 혼을 쏟아 바이올린을 만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내 안나는 자신과 아이의 미래가 궁금해 점을 본다. 다섯장의 카드를 뒤집으며 점성가가 말해 주는 그녀의 미래. 아내가 출산후유증으로 죽자 니콜로는 아내의 머리털로 만든 붓으로 아내의 피를 바이올린에 바른다. 명품 레드 바이올린(Red Violin)은 이렇게 탄생했고, 그 바이올린의 운명은 안나의 운명이 됐다.

그 운명은 궁정음악가가 되려는 알프스 수도원의 10살 천재소년 캐스퍼(크리스토프 콩즈)의 꿈을 산산히 부수고 그에게 죽음을 가져다 준다. 소년과 함께 묻혔다 겨우 다시 세상에 나온 바이올린은 떠돌이 집시의 장난감이 되기도 한다. 19세기에는 열정적이며 변태적인 영국의 천재 바이올리스트 포프(제이슨 플래밍)의 손에 들어가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섹스를 하면서 연주를 해야 영감이 떠오르는 그의 외도를 참지못한 아내에 의해 바이올린은 부서질 뻔하고 포프는 자살한다.

20세기 문화혁명기의 중국으로 흘러간 바이올린. 네번째 카드는 군중앞에 재판을 받고 불에 던져질 위기의 운명을 예언한다. 혁명의 깃발 아래 교향곡은 자본주의 상징이며 바이올린은 그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도구다. 음악을 사랑하고, 자신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바이올린은 영혼의 울림이지만, 그것을 모르는 자에게는 저주의 물건이다. 가까스로 그 불길에서 벗어나 카드의 마지막 점괘대로 안식처를 찾은 바이올린.

그런데 그 안식처가 한 미국인 바이올린 감정가 모리츠(샤무엘 잭슨)이라니. 그것도 바이올린의 완벽함에 감명을 받아 경매장에서 가짜로 바꿔치기 하고 몰래 빼돌리는 사기극을 연출하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명품의 주인이란 결말이 길고 긴 시간(2시간10분) 바이올린의 혼과 소리, 그것을 가졌던 사람들의 운명에 마음을 빼앗겼던 관객의 감동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캐나다 프랑소아 지라드 감독의 「레드 바이올린」은 존 코리질리아노의 음악과 조슈아 벨의 연주만으로도 한편의 아름다운 음악영화가 된다. 바이올린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경매에 참가하는 장면을 반복하면서 과거를 교차시키는 구성도 독특하다. 그들의 국적에 따라 영화의 장소도, 연기자도 바뀌는 또다른 다국적 영화이다. 그러나 마지막 모리츠를 선택한 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그것이 미국시장을 노린 것이라면 더 더욱. 6일 개봉.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 ☆은1/2, 한국일보영화팀 평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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