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계 서열 2위인 재벌의 창업주이자 오너 경영인인 김우중 대우 회장의 퇴진은 한국 경제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는 단순히 경영에 실패한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것을 넘어 개발연대, 압축성장 시대의 종언을 말해주고 있다. 빚에 의존하는 외형 위주의 확장경영과 선단식 경영,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당연시 되던 시기는 끝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김회장은 대우 문제를 발생시킨데 대해 최고 경영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한편 현재 진행중인 대우 문제 처리에 적극 협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기 위해 퇴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대우사태가 국가경제에 미치고 있는 막대한 타격을 볼 때 김회장의 퇴진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려 수출한국의 대표선수로서 대우 신화를 창조하고, 그로써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김회장이지만 막상 그의 퇴진은 명예롭지가 않다.
김회장은 누구보다 먼저 세계경영을 외치고 전세계를 누볐음에도, 실제로는 세계적인 조류하고는 거리가 멀었음이 드러났다. 업종 전문화, 차입 규모 축소, 경영의 투명성 제고, 과감한 구조조정등이 세계적인 추세였지만 대우는 과거의 경영 관행에 안주했다. 머리와 몸통이 따로 움직인 것이다. 대우가 IMF체제의 높은 장벽을 못넘고 좌초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회장의 퇴진으로 대우 계열사들에 대한 워크아웃이 가속화하게 됐고, 시장의 불안도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완전 해소되고 우리 경제가 정상궤도에 오르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김회장의 퇴진은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이제 대우 처리의 공은 정부와 채권단에 넘어갔다.
실사결과 30조원에 달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큰 대우의 부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우선 핵심과제다. 정부와 채권단은 가능한 한 빨리 새 경영진을 선임해 워크아웃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진, 공적 자금 투입에 따른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불안심리를 잠재워야 한다. 「기업가는 망해도 기업은 산다」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한다.
재벌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새로운 천년의 시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실현하려면 이에 맞는 새로운 기업 체제가 요구된다. 단순히 발상의 전환 정도로는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재벌 개혁은 이제부터가 본격 시작이라는 것을 김회장 퇴진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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