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李根安)전 경감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근무태만」을 넘어 「방조」에 가까웠다. 연고지 전담형사가 이씨의 집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가 하면 글자하나 고치지 않고 같은 내용이 되풀이된 동향 월보(月報)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이씨의 말대로라면 결국 경찰은 자신의 집에서 10년간 은신했던 이씨를 연인원 389만명을 동원하고도 찾아내지 못한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한 셈이고 「알면서도 일부러 잡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더욱 짙어졌다.
경찰청은 89년 이씨가 수배된 직후부터 경기경찰청 강력계에 수사전담반을 두고 이씨 가족 등 친인척 18명의 연고지 관할인 서울 부산 인천 등 6개 지방경찰청, 14개 경찰서 등에 연고지 수사전담반을 설치해 운영해 왔다. 이씨의 주소지 관할인 서울 동대문 경찰서에도 전담반이 설치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거창한 규모의 이들 전담반이 한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씨가 자수했던 28일 밤, 이씨 연고지 관할 용남파출소는 기자들의 거주지 문의에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로 일관했다. 29일 아침엔 전담반인 수사과 직원들 조차 이씨의 집이 어디인지를 몰라 기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이 한 일이라고는 매달 한번씩 보고서를 경찰청 등에 올리는 일이 고작이었다. 동대문서가 경찰청등에 올린 보고서철에는 『부인 등 주변인물 상대로 탐문수사한 바 수배자 내왕 사실을 발견치 못하였으며…』등의 똑같은 내용이 날짜만 고쳐진채 매달 반복됐다.
동대문서는 또 주변상인 이모씨등을 이른바 「망원」으로 심어 놓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씨등은 『최근 5-6년동안 경찰이 연락해 오거나 찾아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집안 내부구조를 알 수도 없었다. 동대문서는 29일 『집안 목욕탕에 골방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어떻게 뒤지느냐』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담반을 맡았던 직원들은 『들어가 본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씨 전담반의 모형사는 『자주 찾아가지 않았고 집안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며 『전화 한번 하고 보고서 올리는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중요 수배자에게 으레 행해지는 감청수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검거의지는 더욱 의심을 받고있다.
한 경찰관계자는 『전직경찰관이라 잡아봤자 욕만 얻어먹는다는 생각을 대부분의 경찰들이 했을 것』이라며 『위로부터도 이근안을 잡으라는 독촉이나 압력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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