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전모나 주장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한나라당은 움직일 수 없는 몇가지 실책을 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문건의 신빙성에 대한 스크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정형근의원의 주장대로 「이도준 기자가 문건을 건네면서 문건 작성자로 이강래 전청와대정무석을, 문건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장본인으로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를 각기 지목했다」고 해도 정의원과 한나라당은 사실관계를 확인했어야 마땅했다. 이기자는 이전수석과 이부총재를 지목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데, 이기자의 주장이 맞다면 더군다나 정의원과 한나라당은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이회창총재 역시 정의원의 주장을 아무런 여과없이 수용하는 잘못을 범했다. 이총재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정의원의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여러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총재실 관계자들은 『정의원이 제보자의 신분을 철저히 감췄기 때문에 도리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총재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차 폭로 전에는 또 그랬다 해도, 이총재는 문건 작성자가 이전수석이 아니라 중앙일보 문일현기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이종찬부총재의 실명(實名)과 제보자 신분의 윤곽을 제시하는 정의원의 2차 폭로 감행을 승인했다.
당지도부가 정의원의 단독 플레이를 구경만 한 것도 한나라당의 내부실책으로 지적된다. 당지도부는 정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추가입증하려는 팀플레이를 하기는 커녕 괜히 흥분하며 추임새 넣기에만 바빴다.
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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