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분홍색 운동복을 입고, 중국음식 외상값 떼어먹고 도망가다 아파트벽에 숨는 유동근. 『형! 빨리 와 이제 이삿짐 다 쌌어』 이재룡이 소리친다. 27일 오후 1시 경기 안산시 고잔동 주공 5단지 아파트앞. MBC 「사랑해 당신을」 후속으로 11월 6일 첫방송할 「남의 속도 모르고」(문영남 극본, 신호균 연출) 촬영이 한창이다. 수십명의 아줌마들이 유동근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수군거린다. 『왕이 저렇게 망가질 수 있어? 참 웃긴다!』아줌마들의 말처럼 「남의 속도 모르고」는 두 가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요즘 서민들의 가족 풍속도를 그리는 코믹 드라마. 「21세기는 여성의 시대」이므로 잘 나가는 여자 만나 백수로 지내겠다는 유동근. 이미숙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뒤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
또한 백수인 형과 실패할 사업만 골라 하는 아버지를 둔 이재룡은 2년 6개월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신애라와 짝을 이뤄 어렵사리 결혼하고 30대 서민부부 생활을 보여준다.
「사랑해 당신을」이 정통 주말극의 패턴에서 벗어나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남의 속도 모르고」는 온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정통 홈드라마를 지향한다. 신호균 PD는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다루되 주제에 치여 무겁지 않게 전체적인 전개방식을 유머와 코믹 터치로 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우선 등장인물의 이름부터가 웃긴다. 주인공 유동근과 이재룡은 「최소한」 「최대한」, 이들과 커플을 이루는 이미숙과 신애라는 「전남자」와 「나도해」. 대사 역시 『나 울아부지한테 핸드폰 압수 당한거 온국민이 다아는 대형뉴스인데 어떻게 너만 모르냐』는 식이다.
그리고 개그맨 이창명 등 카메오(깜짝 단역)를 간간히 등장시키는 것도 웃음을 유발하는 또 하나의 장치. 연기파 나문희 김용건 장용 윤미라 등이 젊은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요즘 드라마가 너무 가볍고 재미와 웃음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남의 속도 모르고」 제작진과 출연진은 의식하고 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새장르 도전하는 유동근
외모나 연기는 선이 굵다. 캐릭터나 연기 스타일은 섬세하기보다는 두텁다. 부드러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하다. 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과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KBS 주말극「야망의 전설」에서 각각 강인한 태종 역과 야망에 불타는 가난한 집안의 맏형으로 나와 남성과 여성 시청자들로부터 골고루 사랑을 받았던 유동근(42).
그가 「남의 속도 모르고」로 대변신을 시도한다. 대사의 미묘함을 살리고 표정 연기의 강약 조절이 필수적인 코믹 드라마의 주연이다.
외상값 떼먹고 숨는 그의 연기는 섬세하지 못했지만 덩치 큰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꼴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분홍색 운동복에도 잘 드러난다. 『분홍색이 촌스러워 제품이 나오지 않아요. 마침 현재 출연하고 있는 KBS 어린이극의 아역 연기자 가족 중에 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 특별히 부탁해 만들었죠』
권위적인 카리스마를 없애는 게 유동근의 변신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다. 그는 『별로 코믹물을 해보지 않아 매우 부담스럽다. 시청자들에게 강한 캐릭터가 인상지워져 힘을 빼고 연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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