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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이 시대, 기자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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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이 시대, 기자는 부끄럽다

입력
1999.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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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大憂)」는 대우신화의 처절한 붕괴만이 아닌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는 어딘가 수상하고 맹랑하며, 참으로 크게 걱정되는 사태가 적지 않다.가령 있을 수 없는 일이 빚어진다거나, 해서는 안되는 일이 저질러진다거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시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그것들이다.

환자에게 관장을 한다며 양잿물을 넣어 죽게 만든 멀쩡한 종합병원, 항공유 대신 맹물을 넣어 전투기를 추락하게 만든 막강 공군부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어이없어 하지만, 이렇듯 넋빠진 현실이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뜻밖의 빈 틈을 뚫고 여기저기서 돌출하는 것이다. 하필 그 종합병원과 그 공군부대 뿐인가.

「기자가 작성한 언론장악에 관한 문건」은 우리 사회를 지탱한다고 믿어 온 몇 안남은 신뢰구조를 마지막으로 허문 충격이다.

언론이 공작의 대상이 되어온 지는 역사가 오래되었으므로, 비록 민주화한 국민의 정부아래서 똑같은 공작이 시도되었을지 모른다고 해서, 그토록 크게 놀랄 일은 아닐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 문건의 작성자로 알려진 인물이 현직 기자라는 사실이고, 그것의 배경이 되는 언론_권력 유착구조가 온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건은 「성공적 개혁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방안」이 제목이지만, 정권에서 이반하는 언론기관들을 어떻게 하면 정권 뜻대로 길들일 수 있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적어내려간 보고서다. 「언론 목죄기」의 방법을 그 언론사들 중 한 곳에 속한 기자가 스스로 제시한 것이다. 그가 기자다. 기자라는 이름이 너무도 부끄러운 순간이다.

그 기자가 소속한 신문사의 한 간부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언론계에 만연한 언론계와 정치권의 유착구조에서 발생한 일로 언론계 전체가 반성할 일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사주가 탈세혐의로 구속중인 그 신문사의 또다른 간부는 그보다 앞서 미국의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부끄럽다』였는데, 이 부끄러움은 전혀 다른 경우다. 자신의 회사 사주가 구속된 것을 「법치」아닌 「인치」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한 그는 『한국에서는 나의 비극이 다른 언론매체에는 행복이 되는 풍토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끄럽기로 하면, 지난 97년 대선 때 역시 그 신문사의 기자가 작성했다는 「이회창 후보의 경선 전략」에 관한 보고서도 있다. 그들이 느끼고 있거나 느껴야 하는 부끄러움은, 비록 다른 매체에 속한 기자이기는 하지만 지금 나에게도 커다란 부끄러움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그들과 한 하늘아래 살고 있는 기자이기 때문이다. 결코 「나의 행복」은 되지 않는 일이다.

지난 26일은 박정희전대통령의 20주기라고 해서 어느 때보다 떠들썩하게 추도행사가 줄을 이었다. 집권 대통령이 앞장서서 「역사 속에서 존중받는 지도자」로 찬양하고 기념사업회의 명예위원장이 되며 백여억원의 국고지원까지 하고 있으므로, 더구나 북의 수령인 김정일 조차 느닷없이 평가를 거드는 형편이므로 이같은 「박정희 신드롬」을 수상하고 맹랑한 일로만 굳이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하루 전 한 건물 지하에서 초라하게 열린 「박정희 기념관 국고지원에 대한 역사학자의 비판과 대안」이라는 토론회에서 한 발표자가 뇌까린 말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토론회를 열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 자체가 우리의 역사교육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역사학자로서 참담함을 느낍니다』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함」을 말하는 그들 전국 역사학자 모임의 참가자들은 대통령이 정략적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에 앞장섬으로써 초래되는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에게 맡겨 그들이 객관적 검증과 연구를 통해 엄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대통령의 몫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박정희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채 아직도 그 극복 방법에 혼선을 빚고 있음은 기자가 스스로 자승자박을 마지않는 언론계 현실처럼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참으로 기자라는 이름과 더불어 이 시대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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