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의 나라」 호주가 내달 6일 대통령을 국가최고 지도자로 하는 공화제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1788년 대영 제국의 범죄자 식민지로 출발,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영연방으로 남았던 호주가 65년의 백호주의(백인우월주의) 폐지에 버금가는 진로 수정의 기로에 선 것이다.공화제 헌법안의 핵심은 영국여왕 대신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옹립하는 것. 현행 의원 내각제가 유지되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수반에 불과하지만, 영연방 탈퇴를 통한 「홀로서기」를 법제화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국민투표를 10일 앞둔 26일 현재 호주 현지의 여론 동향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의 혼돈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언」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의 56%가 영연방 잔류를 지지할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호주방송(ABC) 등의 여론조사에서는 주민의 73%가 공화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새 헌법안이 통과되면 호주는 영연방 편입 100주년이 되는 2001년까지 대통령 선출 등으로 공화제 이행을 완료할 예정이다. 신임 호주 대통령이 2000년 9월의 시드니 올림픽의 개막선언을 할 가능성도 있다. 공화제안은 18세이상 1,230만 유권자의 과반수 찬성과 전국 6개주 중 4개주 이상에서 과반수 득표를 얻을 경우 가결된다.
공화주의자들의 논리는 호주의 지정학적 위치와 시대적 요구를 고려할 때 「탈구입아(脫歐入亞)」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호주의 미래는 아·태 지역의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호주인을 국가원수로 하는 공화국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창설, 동티모르 군대파견 등은 이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된 예이다. 한 호주전문가는 이와 관련, 『자아를 찾아 집을 떠나기를 갈망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조바심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세안 등 주변국은 호주의 이같은 변신 움직임을 의심스런 시선으로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모하마르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툭하면 호주의 지역패권 움직임을 경고하고 있고, 인도네시아는 호주군의 동티모르 진입을 「침입」으로 간주할 정도로 격앙된 상태다.
이들 국가의 호주에 대한 거부감은 특히 최근 하워드 호주 총리의 「지역 맹주」발언으로 증폭됐다. 하워드 총리는 지난달 22일 호주군의 동티모르 파견과 관련, 『호주는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을 대리한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역할을 수용할 것』이라고 말해 주변국으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아시아권으로 들어오려는 호주의 노력이 성공할 지 주목된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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