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경우에도 군기는 군의 생명이어야 한다. 군 이라는 특수조직이 존재하기 위해서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강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훌륭한 병기로 잘 무장됐다 해도 이를 운용하는 병사들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면 승패는 뻔한 일이다. 군기빠진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정병(精兵)도 강군(强軍)도 군기없이는 불가능하다.지난달 14일 경북 문경에서 추락한 공군 F-5F(국산 제공호·制空號)전투기의 추락원인이 항공유 대신 사실상의 맹물이 연료로 주입됐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공군 역사상 수치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추락한 공군기의 연료탱크엔 항공유 대신 물이 95% 였다고 하니 이것이 어느나라 공군의 얘기인가. 우리는 조종장교 1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이번 사고가 총체적인 군기해이 사고라는 점에서 관련자는 물론 공군지휘부에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유류저장 탱크안의 항공유가 전투기 연료탱크로 들어가는 데는 적어도 4단계의 점검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사고당시 이 점검시스템은 모두 작동불능이거나 고장이었다. 물이 대부분인 「맹물 항공유」를 주입받은 전투기는 사고기 말고도 7대가 더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들 전투기도 이륙했다면 대량참사는 불보듯 뻔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공군이 사고직후 사고원인을 밝혀내고도 이를 40여일간이나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방장관에게도 자체 인사위에서 관련자를 문책한후 보고했다고 한다. 사고발생 한달여가 훨씬 지난 시점이고 한 장교가 이를 폭로하자 마지못해 공표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공군이 사고원인을 장기간 은폐한 이유가 국정감사와 사고를 전후해 실시된 장병들의 진급심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사에 영향을 우려해 사고원인 발표를 은폐하려 했다니 열렸던 입이 잘 닫혀지지 않을 정도다.
상상을 넘어서는 이번 사고에는 아직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다. 폭격에도 견뎌야 한다는 지하연료탱크에 물이 들어간 이유등은 한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연료에 물을 탄 군수비리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사고원인을 전면 재조사해서 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 길만이 실추된 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직분에 충실한 대다수 군장병들을 위무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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