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예측서들이 적지 않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지 전망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읽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먼 미래의 모습을 담은 것이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거나, 적어도 내가 살았을 동안에야 이런 일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정보통신의 발달은 혁명과도 같다. 정보통신기술은 고속도로를 200㎞로 달리는 스포츠 카 같아서 자전거 타고 동네 한바퀴 도는 정도의 낡고 느린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미처 상상할 여유도 주지 않고 많은 일이 내일 바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거리의 소멸, 디지털 혁명」(The Death of Distance)은 정보통신혁명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또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평가하고 가늠하는 책이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수석 편집위원인 지은이는 전화, 인터넷 등 정보통신 수단의 변화와 상업과 기업, 경쟁과 집중 등 경제활동, 사회와 문화, 정부와 국가의 변화까지 포괄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이 책이 남들이 하지 못했던 아주 새로운 전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책은 다른 미래 예측서와는 달리 「급격한 변화의 한 가운데 내가 있다」 「당장 준비해야 할 미래의 모습들은 어떤 것인가」는 문제들을 절감하게 만든다. 지은이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지금 우리가 겪는 생활의 변화들과 적어도 10∼20년안에 닥칠 일을 함께 담았고, 그가 적절한 자료와 인용을 섞어가며 그 구상들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 때문에 지불해야 했던 많은 비용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성장의 기본인 지식과 정보의 광범위한 확산, 새로운 종류의 산업조직과 혁신, 또 그에 따른 경제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 기업의 최적거래는 경제 분야에서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들로 꼽힌다.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지역에 상관없이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의 수평적인 유대가 커진다. 반대로 정부와 국민, 고용주와 피고용주처럼 수직적인 관계는 약화할 것이다.
언어생활 등 문화의 모습도 달라진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지적재산 수출국이라는 점과 영어가 인터넷을 지배하는 언어라는 사실 때문에 영어가 거의 세계 공용어 자리에 올라설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수 민족의 언어도 이런 통신기술의 발달로 혜택을 본다. 케언크로스는 다채널 디지털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소수민족 언어로 제작한 프로그램은 더 쉽고, 더 저렴해지면 호응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거리의 소멸이 평화를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 「통신을 이용해 정부 지도자가 의사소통을 더 잘 할 수 있게 되고, 일반 시민도 전세계인들의 사상과 열망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인류의 유대는 더욱 강화할 것이다」. 책의 끝부분으로 가면서 그의 예측이 너무 낙관주의로 흐르는 점을 뺀다면 세계 경제, 정치, 문화가 바뀌는 흐름을 읽으려는 사람은 한 번쯤 펼쳐 볼 책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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