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다카시(永井隆·1908∼51)는 전후의 피폐한 삶과 고통에서 헤매던 일본인들에게 따뜻한 인간미, 평화의 염원을 담은 인류애를 전해주는 글로 이름이 높아진 사람이다. 그의 글에는 원폭 투하의 현장에서 상처 입은 몸으로 의사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성실성,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신앙심, 어머니를 잃고 이제 곧 고아가 될 처지의 자녀를 아끼는 부정(父情)이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다.시마네(島根)현 마쓰에(松江)시에서 태어나 나가사키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나가이는 1930년대 군의관으로 두 번 종군하고 40년 일본으로 돌아와 나가사키대 의대 뢴트겐과 조교수가 된다. 의대 부속병원 물리치료과 부장도 겸임했다. 하지만 그가 다루던 방사선 때문에 45년 6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란 진단과 함께 3년 시한부 생명이 선언되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원폭 투하로 아내 미도리(綠)를 잃었다.
그는 46년 나가사키 의대 교수가 되었으나 그해 7월 쓰러져 병상에 누워 글을 썼다. 「로사리오의 기도」(이 책은 국내에서 「묵주알」(바오로딸 발행)이란 이름으로 나온 적이 있다) 이외에도 이와 비슷한 단상, 생활 이야기들을 모은 「이 아이들을 남겨 두고」 「꽃 피는 언덕」 「생명의 강」 「촌의(村醫)」 「나가사키의 종(鐘)」 「평화의 탑」 등의 책을 남겼다. 51년 5월 모교 부속병원에서 숨진 뒤 장례는 나가사키 시민장으로 치러졌고, 그의 몸은 유언에 따라 의학 해부용으로 쓰였다.
그가 숨진 뒤 그를 기리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영화가 제작되었다. 일본 국회는 전후 처음으로 여야가 만장일치로 그에게 표창 권고를 결의했다. 나가사키에는 그의 기념관이 두 곳이나 지어졌고, 그를 기리는 평화상을 만들어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