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규제가 구조개혁 아닌 사후단속 위주로 일관돼 「정책부재」란 지적을 받고 있다.재벌체제를 지탱하는 부당내부거래의 경우 근절책 제시 보다는 일회성 과징금 부과만 반복하고, 위장계열사 문제 역시 30여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한건도 적발치 못하는 조사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나마 국회나 시민단체등이 문제를 제기해야 비로소 움직이고, 여론이 나쁘면 재조사를 벌이는등 공권력의 신뢰성 추락과 함께 국내경제 최대현안인 재벌개혁을 「뒷북치기」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4일 공정위에 따르면 올들어 총 32건의 5대 재벌 위장계열사 조사(4건은 조사진행중)를 벌였지만 모두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계열분리된 위성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적발실적도 현대 2건, 삼성 1건등 총 3건에 불과했다. 공정위 당국자는 『지분 30%이상 최대 출자자나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위장계열사로 볼 수 없으며 법적 계열사가 아니면 계좌추적권도 발동할 수 없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요하면 법을 고쳐서라도 조사강도를 높여야 함에도 불구, 현행 제도 테두리에 안주하고 있다며 그나마 이미 조사가 끝난 사항도 국회등에서 문제만 되면 재조사를 벌여 공정위 스스로 조사능력의 한계를 자인하고 있다.
「경영권세습」도 삼성SDS가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장남 재용(在鎔)씨 등에게 저가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넘긴 것외엔 적발실적이 없다. 그러나 이는 시민단체등이 수년전부터 제기했고 상당한 자료가 축적된 사안이어서 공정위의 「성과」는 아니며 적발은 오히려 때늦었다는 지적이다.
현재 공정위의 재벌정책은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전부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삼성SDS의 경우 158억원의 과징금만 내면 합법적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고 삼성생명도 월 보험료수입의 1%에 불과한 150여억원만 내면 2,000억원에 가까운 지원성 거래에 대해 면죄부가 부여되는 셈이어서 재벌들이 부당내거래로 얻는 유형·무형의 막대한 이익과 비교하면 과징금은 「솜방망이」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정위는 법상 부당행위에 대한 「원상회복명령」이나 「관련 임직원 형사고발」등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 기업에 미치는 파장등을 이유로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효율적 마무리를 위해선 핵심주무부처인 공정위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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