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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상] 희생...봉사...그늘 밝힌 빛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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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대상] 희생...봉사...그늘 밝힌 빛나는 삶

입력
1999.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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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은평천사원 조규환씨40여년간 고아와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온 은평천사원 조규환(趙奎煥·63)원장은 「버려진 아이들의 대부(代父)」다. 59년 처음 문을 연 서울 은평구 구산동 거북산 중턱의 은평천사원에는 어느 한구석 조원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의 방과 학교, 재활센터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안부를 묻고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한다. 『마(馬)를 이쪽으로 움직여야 장군을 피하지』 『오늘 작업 재미있었니?』 『성현아, 네 그림 정말 멋있더라』 아이들이 자신을 친아버지처럼 따르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는 조원장의 지난 삶은 오로지 버려진 아이들과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장애인들과 함께 걸어온 고단하고 힘든 길이었다. 59년 윤성렬(77년 작고)목사가 이곳에 세운 천막고아원에서 야학교사를 하며 고아들과 인연을 맺은 조원장은 그해 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버려진 아이들의 「지킴이」로 발벗고 나섰다.

『너무나 정이 든데다 불쌍한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요. 처음 5명으로 시작한 천막고아원은 1년만에 수십명으로 늘어났습니다』

64년 윤목사로부터 원장직을 물려받은 그는 건물증축을 통해 원생을 200여명으로 늘렸고 78년부터 장애인고아 돌보기 사업까지 시작했다. 이후 장애인 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장애인학교와 작업장, 병원까지 세웠다.

조원장은 40년간 천사원 운영을 통해 수천명의 자식을 얻었다. 이중에는 박사와 교수 의사 공무원 교사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많다. 그는 『아이들이 바르게 커서 박사 의사가 돼 찾아오거나 휠체어 생활을 하던 장애인 고아가 야학으로 공부해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친자식이 잘 된 것처럼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고아원생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데도 수술비가 없어 안타깝게 지켜봐야 할 때, 사회에 나가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교도소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듯했다』고 조원장은 회상했다.

올해 서울시민대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된 조원장은 『이 상은 나보다 박봉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봐준 직원들의 몫』이라며 『고아나 장애인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면 얼마든지 사회의 동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본상 풍납복지관 이창화씨

-시각장애인으로 복지 시설 운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많은데 상을 받게돼 부끄럽습니다』

풍납사회복지관장 이창화(李昌華·41·사진·서울 송파구 신천동)씨는 서울시민대상 본상수상소식에 자신의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데 열심이다.

두살때 고열로 시신경이 약해져 20세에 완전 실명하기까지 이씨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맹학교와 일반 학교를 번갈아 다녔다. 맹학교를 다니다 약시 아동 학급이 생긴 월계초등학교로 전학한 이씨는 「장님」이라는 급우들의 놀림속에서도 기죽지 않았고 중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섰다. 하지만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을 오르다 굴러떨어진 후 다시 맹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외로움을 이기기위해 책읽기에 파묻혔다. 당시 구한 것이 레마르크의 「개선문」. 하지만 뒷부분이 떨어져나가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맹학교 졸업 후 안마로 생계를 꾸리던 이씨가 대학생자원봉사자등이 만든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테이프도서관에서 「개선문」을 다시 읽기까지는 꼭 10년이 걸려야 했다.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86년부터 김치 공장을 하며 돈을 모은 이씨는 자연스레 복지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89-93년 강남대 사회사업학과를 다니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이씨는 93년 중국 지린(吉林)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를 세웠다. 96년에는 송파인성사회복지관에 정신지체아 등 장애아동을 위한 어린이집을, 97년에는 풍납종합사회복지관 내에 전자 도서관을 만들어 각종 도서와 정보를 PC통신망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배성민기자

gaia@hk.co.kr

■본상 사회복지사 유송자씨

『제가 받은 이 상은 복지관 식구들과, 숨어서 남모르게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평생을 살아온 사회복지사 유송자(兪松子·55·여·사진·서울 금천구 시흥동)씨. 유씨의 하루는 오전6시 복지관 식구들과 함께 하는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봉사를 천직으로 알며 24년간 복지관일을 하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기도다.

75년 2월 국제가톨릭형제회(AFI)회원이었던 의사 약사 동료 두명과 함께 달동네였던 서울 구로구 시흥동에 「전(全)·진(眞)·상(常) 복지관」을 설립하면서 유씨의 이웃사랑은 시작됐다. 유씨는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해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노인들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면서 유씨는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어려운 문제의 상담은 물론 저소득 어린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고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유씨는 무료유치원, 가정호스피스, 법률상담 등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매주 목요일이면 다섯명으로 늘어나는 복지관 식구들및 자원봉사자와 함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치료도 해주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듣는다. 도움이 될 수있는 일을 직접 찾기 위해서다.

『시설이 기준에 못미쳐 복지관이 아직 정식으로 인가를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유씨는 『복지관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온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참다운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장려상 김도진 목사

86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주변 사창가에 가나안 교회를 세운 김도진(金度珍·60)목사는 교회 안 희망의 집에 노숙자와 부랑아, 장애인, 전과자등 100여명을 받아들여 숙식을 함께하며 변함없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김목사는 42세때인 78년 「늦깍이」신학도로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탈선과 폭력으로 얼룩진 자신의 불행한 젊은 시절을 뒤늦게 회개하고 남을 위해 살고자 결심했던 것. 7년간의 신학교 공부를 마치고 「가장 낮은 땅」청량리 588에 둥지를 튼 것도 자신의 과거를 다른 사람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매일 쌀 세가마(180㎏)와 밀가루 한 포대씩을 준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가족으로 맞이했고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 재기할 수 있도록 힘썼다. 고아출신의 청년을 목사로, 세상을 비관하는 패배자를 회사경영자로 변신시키는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 삶을 열어준 김목사는 『장소가 너무 좁아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장려상 김영애씨

서울 광진구 군자동 지하 전세방에서 75세 노모와 70세 이모를 봉양하는 김영애(金永愛·46·여·사진)씨는 생계를 위해 혼자 10평짜리 호프집을 운영하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씨는 88년부터 혼자 사는 노인집이나 노인정을 매주 토요일마다 방문해 이발과 면도봉사를 하고 있으며 장애인보호소에도 수시로 찾아가 빨래 목욕 및 식사제공을 하고 있다. 또 97년부터는 광진구청 자원봉사요원으로 가입해 주 1회 실시하는 구청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대구에서 태어난 김씨는 18세때 서울로 올라와 미용기술을 배운 뒤 일반 회사와 미용실을 다니면서 이웃돕기를 실천해왔으며 92년 지금의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활동 폭을 더욱 넓혔다. 김씨는 식구가 늘어나면서 생활비가 빠듯해 이웃돕기가 힘에 부치자 96년부터 리어커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재활용품 수거·판매에 나서 수익금 전액을 봉사비로 쓰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남을 돕고 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김씨의 이웃사랑 동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심사평 강영숙(姜映淑·68·사단법인 예지원 원장)심사위원장

아름답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고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봉사해온 공적으로 추천된 각계 각층의 모범시민중에서 선발된 서울시민대상 후보자는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통과했다. 첫째,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시민의 칭송을 받을 만한가. 둘째, 맡은바 소임을 다하여 천만 시민의 귀감이 되며 민주시민 정신구현에 앞장섰는가. 셋째, 공·사생활에 흠이 없을 뿐 아니라 서울에 대한 향토애가 깊어 시민의 정서를 대표할 만한가 등이다.

서울시와 한국일보사가 공동주최한 제11회 서울시민대상은 이같은 기준을 중심으로 각계의 전문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심혈을 기울인 논의끝에 선정했다. 1차심사에서는 공적조서를 예의검토, 3배수인 18명을 뽑았고 이들을 대상으로 공적사실및 현장확인등 2차 심사를 거쳐 10월6일 최종심인 3차 심사에서 남녀 각 3명의 수상자를 결정했다. 심사일정상 9월1일 이후의 접수후보자에 대해서는 다음해로 심사를 넘겼다. 특히 올해부터는 연중 접수기간을 통해 훌륭한 모범시민이 추천될 기회를 넓혔음을 심사위원 일동은 기쁘게 생각한다. 2000년의 서울시민대상에는 더 많은 추천이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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