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사라졌다. 정치의 성수기인 정기국회가 열려 있지만 정치는 없고 투쟁과 반목으로 점철되고 있다.정치 실종의 가장 가까운 예는 국정원의 도·감청 의혹을 다루는 여야의 파행적 행태이다. 우선 여권은 정기국회 회기중에 대화 파트너인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를 고발하고 여당은 이를 맹목적으로 추인하는데 급급해 포용력 부재의 한계를 새삼 확인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에 대해서도 집권 경험이 있는 정당다운 신중함과 국가 이익을 생각하는 긴 안목이 결여돼 있고 정치를 정치로 풀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치인 자신의 입에서 『워낙 의견이 다르니 협상은 할 필요도 없다』는 「협상 무용론」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정치부재 현상의 한 단면이다. 예결위원장직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으로 예결위 가동이 불투명하고 선거구 제도에 대한 견해 차이로 정치개혁특위 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는 것은 국가 운영, 정치일정 추진과 직접 연결돼 있는 사안이어서 상황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정치 부재의 원인은 다양하다. 여당의 경우 위만 바라보는 「비서정치」적 사고, 1인 중심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 핵심 인사들이 「만들어가는 정치」에는 익숙지 않고 야당 시절 보스의 지시를 이행하는 비서 정치 수준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야당 지도부는 『복잡한 역학구조 안에서 당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요 고비마다 정치를 정치로 푸는 여지를 차단, 투쟁우선 전략으로 당의 균열을 막는 데 치중해 왔다』는 비판이다. 『중진들의 공간을 소멸시켜 정치를 모르는 초선당(初選黨)이 돼 버렸다』는 자조적인 내부 목소리도 크다.
이처럼 여야 모두 취약점을 안고 있어 과거 중요한 정치적 고비때마다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해 왔던 막후대화 채널이 현재는 제대로 형성돼 있지도 않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선 『신뢰성있는 여야 핵심 인사들 사이의 물밑 대화 기능을 복원하고 총재들의 권한을 제대로 위임받은 중진 또는 고위당직자들간의 상시 대화채널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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