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000년도 예산안 심의의 의사봉을 잡게 될 「예결위원장」 자리를 놓고 연일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18일 여야 총무회담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파국 일보 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29일까지의 의사일정만 합의했다. 여야가 이처럼 사생결단식으로 예결위원장 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예산안 심의의 중요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번 정기국회 최대의 현안인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 협상을 앞두고 벌어지는 기세싸움의 측면이 더 크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나라당이 예결위원장 자리를 틀어 쥐고 예산심의를 정치개혁 협상의 볼모로 잡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야당측이 선거법 협상을 진행하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예산안과의 연계전략으로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도를 원천봉쇄키 위해서도 순번제에 의해 당연히 국민회의 몫인 예결위원장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여당의 논리다. 또 영남 출신인 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의원이 예결위원장으로 이미 내정돼 당정협의를 진행시켜 왔다는 점도 여당으로선 부담스런 대목이다.
야당의 논리와 주장은 완전히 거꾸로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갑작스런 예결위원장 욕심은 여차하면 선거법을 단독으로 처리하기 위한 「징검다리」 확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선거법 등 정치개혁 협상에서의 여당 독선을 막기 위해선 예결위원장 자리를 「안전판」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내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야당측은 또 국회 원내 제1당이 예결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우면서 이미 4차례나 연이어 예결위원장을 역임한 한나라당 김진재(金鎭載)의원의 원만한 회의진행엔 『여당도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야 누구 주장이 맞나
[예결위원장 내것 주장] 누구 말이 맞나
1999/10/19(화) 19:09
이번 정기국회 예결위원장 자리를 서로 「내것」이라고 우기는 여야의 주장은 완전히 평행선이다. 여당측은 올해 초 제1차 추경예산안 심의 때 당시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자민련 구천서(具天書)·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총무가 예결위원장을 3당이 돌아가며 맡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엔 당연히 국민회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한전총무는 『당시 박준규(朴浚圭)의장의 중재로 순번제가 양해됐다』는 정황 설명을 곁들였다. 이에대해 박전총무측은 지난해 11월 정기국회 예산심의 때 정치개혁특위, 실업대책특위 등 4개 특위 위원장을 여당에 주는 대신 예결위원장은 야당이 갖기로 「바터」를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박전총무측은 『예결위원장은 원내 1당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었다』고 설명한다.
여당측은 이같은 주장을 또 맞받아친다. 올해 7월 제2차 추경예산안 심의 때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자민련 강창희(姜昌熙)·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가 원래 자민련 몫으로 오장섭(吳長燮)의원이 내정까지 됐던 예결위원장을 한나라당에 양보했다는 게 여당측 얘기다. 이 과정에서 「정기국회 때는 국민회의 몫」임이 다시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한나라당 이총무측은 『그때도 양보가 아니라 당연히 우리 자리였다』고 여당의 주장을 일축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한 입씨름만 계속될 뿐 이를 증명할 합의문 등 어떠한 문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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