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학이 독자들로부터 멀어지는 큰 이유의 한 가지는 제대로 된 문단사(文壇史)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하는 문인들이 많다. 문학사가 정사(正史)라면 문단사는 야사(野史)이다. 체계와 논리를 중시하는 정사에는 들어가지 못할 솔직한 이야기들이 야사에는 살아있다. 문학 야사인 문단사는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의 문인들의 열정이 밴 땀과 눈물, 애증이 교차하는 인간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문학의 생생한 현장이다.강진호(36) 성신여대 교수가 엮은 「한국문단 이면사」(깊은샘 발행)는 이같은 우리 문단의 뒷이야기를 모은, 오랜만에 보는 문단사이다. 1919년 2월에 창간호를 낸 「창조」와 이듬해 나온 「폐허」 발행의 일화를 쓴 김동인의 글부터 50년대말 「자유문협」의 탄생비화를 다룬 김용호의 글까지 24명의 문인들이 직접 증언한 문단야사의 모음이다.
주요한, 홍사용, 백철, 방인근, 양주동 등 일제시대를 거쳐 조연현, 곽종원, 조병화 등의 해방 후 서울 명동의 다방 「피가로」와 「돌체」등에서 울고 웃던 문인들의 숨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식민지 상황을 피해 간도로 갔던 안수길의 「용정·신경시대」에는 꺼져가는 문학의 등불을 지키기 위해 고투했던 문인들의 숨결이 느껴지기도 한다. 엮은이 강진호 교수는 이와함께 1920년대 카프문학 시대를 회고한 이기영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시대」, 해방후 좌익문단의 흐름을 일별한 안함광의 「해방후 문학창조상의 조류」를 함께 실어 균형을 취하고 있다.
1923년 동인시지 「금성」을 창간했던 양주동의 회고, 『특히 기억되는 것은 세기말, 상아탑 및 데카당이란 참으로 매력있는 세 단어였다… 나는 예의 데카당이란 세 문자를 그야말로 요동백시(遼東白豕·요동 사람이 흰 돼지를 낳고는 천하의 귀물로 생각하여 장안으로 천리길을 가다가 요서땅에 이르러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흰 돼지더라는 고사) 격으로 나 혼자만 알거니 생각한적도 있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절규의 해석에서 나왔는지 최근 미국에서는 나체주의자들이 횡행한다는데 그 원래 발상지는 한국(문단)이었다』며 56년 수천명이 운집한 「자유문학」창간 카니발의 나체달리기 대회 일화를 소개한 김용호. 악마주의와 자연주의를 개념적으로 쓴 문학사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강교수는 『모국어에 대한 사랑으로 현실과 온몸으로 맞섰던 선배 작가들의 열정은 오늘날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문인들의 문학에 대한 안이한 자세와는 근본을 달리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문학과 인간을 기껏 여흥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박한 풍조」에 선배문인들의 온 삶이 담긴 문단이면사는 경종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