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다. 2199년. 인공지능을 가진 초대형 컴퓨터는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생명의 활력을 빼앗고, 대신 그들의 뇌에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입력한다. 인간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따라 실제와는 무관한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이런 암울한 삶의 법칙을 깨뜨리는 전사(戰士)가 있다. 「해커」. 이 때의 해커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동하며 기계의 미몽에서 사람들을 일깨우고, 그들을 조직하는 혁명가다. 이런 종류의 해커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 도둑」또는 「컴퓨터 교란자」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그러나 가까운 미래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자」 해커를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해커는 지금 「사이버 전쟁」을 주도하는「용병」이다. 이런 해커의 준동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국제적인 문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난달 국내의 한 인터넷 사이트 회원등록 대행회사의 프로그래머는 인터넷을 통해 경쟁사 컴퓨터로 들어가 경쟁사 회원 5,600여명의 정보를 빼갔다. 국내 최초의 사이버 산업스파이 사건이다.
해킹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러시아 해커들이 미국 행정부의 컴퓨터망에 침입해 미사일 유도장치의 정보를 빼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미국 나스닥의 컴퓨터 장치가 해킹당했고, 여러 나라 정부의 기밀과 군사 정보가 해킹당하는게 현실이다. 이렇게 보면 해킹은 그야말로 국운(國運)까지 걸린 중대한 일이다. 한국정보보호센터 임채호팀장은 4월 열린 「정보보호 심포지엄」에서 『정보전을 예상한 공격및 대응 시나리오가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커들은 가까운 미래에 지난 2000년의 인간 역사와 똑같은 범죄와 약탈, 전쟁을 사이버 공간에서 일으킬 수 있다. 물론 그들에 대항할 선의의 해커들도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먼 미래, 핵전쟁으로 인류가 괴멸하거나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들은 지구를 새로 건설하는 혁명군으로 변할 지도 모를 일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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