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최대의 희생자는 개인투자가들. 「개미군단」으로 불리는 이들이 모이는 증권사 객장은 짧은 환호와 성공담, 그리고 긴 고통과 눈물, 하소연이 늘 배어 있다. 이곳에서 사연이 없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 주부에서 흰머리의 퇴직자까지 사연은 대개 『주식때문에…』로 시작하는 실패담. 사연의 끝은 그러나 자신들의 투자법이 돈잃고 터득할 만한 것은 못되니 피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느 16년 증권맨
전직 증권사 영업부차장인 한모(45·무직)씨. 작년 4월 퇴직금중 4,800만원으로 블루칩 포항제철주를 사들였다. 증권사에서 16년 일한 경험상 블루칩은 「썩어도 준치」였다. 장세회복시 급등도 기대했지만 주가는 반대로 움직였다. 8월경에는 2,800만원을 잃었고 부부싸움 끝에 주식투자를 그만두었다.
그가 진단한 실패의 원인은 블루칩 맹신과 마냥 기다리기. 증권맨 출신이라는 자신감과 퇴직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욕심을 키워 실패를 자초했다. 『퇴직금을 날렸다간 가족 생계가 막막해지고, 또 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블루칩이라 손해보고는 절대 팔 수 없었어요』.
그뒤 막노동과 아파트경비원을 전전한 한씨는 올 3월 다시 객장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신문 방송의 경제뉴스도 꼼꼼이 챙기며 기업실적을 메모해갔다. 그리고 적정주가가 얼마일지 스스로 예상도 해보았다. 자신감이 생기자 그는 남은 퇴직금 3,000만원으로 반도체 주식에 투자했고 예상했던 수익률이 나면 되팔았다. 쉽지 않은 되사기도 주저않고 판단이 서면 매수했다. 지금 골드뱅크를 비롯, 인터넷 관련주에 주로 투자하는 그는 초기 투자금을 거의 회복하는 중이다. 『주식투자는 증권사 직원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냉혹한 세계입니다. 작년과 올해 차이가 있다면 욕심내지 않고,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 동생을 믿은 주부
97년4월 2,000만원으로 초기투자를 시작한 주부 김모(57)씨. 정확히 3년전 그는 거액을 잃은 남편이 주식에서 손을 떼도록 설득했다. 그런데 증권사에 근무하는 동생의 권유로 적금을 깨 주식을 샀다. 『처음 투자하는 사람이 뭘 알겠어요. 동생이 알아서 해주니 믿었죠』. IMF사태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도 『주가가 바닥까지 내려가 곧 오르니 걱정말라』는 말을 믿었다. 작년 6월 동생이 직장을 그만둘 때 원금은 200만원으로 줄어 있었다.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지 못한채 전전긍긍하던 김씨는 「복구」를 결심하고 객장의 아줌마부대가 됐다. 그러나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귀동냥을 해 산 종목들은 쉽게 움직이질 않았다. 『혼자 힘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그나마 남은 원금도 까먹고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빌린 500만원마저 갚을 길이 막막해지자 김씨는 공부를 시작했다. 700번 서비스도 들어보고 증권사 시황정보지는 물론 직원의 추천을 받아 책을 섭렵해나갔다. 그리고 객장에서 만난 이들의 실패담과 성공담을 메모, 자신의 실패원인을 찾아내려 했다. 『그때 배운 것이 목표 수익률 10%, 그리고 5% 하락시에는 손절매 원칙입니다』. 마음을 비운 올 4월부터는 장이 대세상승기 때문인지 조금씩 이익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빚은 갚았지만 원금회복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이 정도에서 주식투자를 그만둘까도 싶었지만 아쉬움이 남아 객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확천금 벌 욕심은 버리고 손해는 최소로 줄이라는 게 그동안 배운 비싼 교훈이죠』.
▲ 돈을 잃으면 손을 못떼는 30대
서울 신월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임모(33)씨는 주식투자로 목돈을 손에 쥔 장모의 권유로 96년 주식에 손을 댔다. 『나이드신 분도 하는데 젊은 내가 못하겠느냐는 생각에 별 준비없이 시작한게 실패를 불렀습니다』. 그해 10월 임씨는 증권사 직원이 추천한 기아자동차 주식을 1만6,000원대에 3,000만원어치를 샀다. 그러나 「상투」를 잡은 고점매수였다. 이후 조금씩 내리던 주가는 해가 바뀌면서 낙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물컵 한잔 한잔 나르며 번 돈이 너무도 쉽게 달아나는 일이 놀라기 조차 했다. 그러나 임씨는 주가가 곤두박질해도 설마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증권사 영업직원들 조차 내 고집을 꺾지 못했죠. 당시에 대선 출마하려던 분들도 기아차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했잖아요』. 임씨는 결국 기아사태가 번지던 이듬해 10월 가지고 있던 주식 전량을 6,300원에 팔아치웠다.
그러나 주식시장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서 죄인처럼 지내며 속앓이를 한 지 2년. 요즘 그는 두달째 야간학원에 다니며 주식을 배우고 있다. 얼마전에는 한 모의투자대회에 참가해 3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경험을 조금씩 쌓으면서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그 때는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 시기를 11월말로 보고 있는 『10월을 넘기면 대우문제도 가닥이 잡히고 연말에는 개미군단에게 마지막 기회가 온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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