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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바람 타는 에너지 정책

입력
1999.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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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연말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경진대회에서 일등을 한 경기도 화성군의 엇섬 주민에게 멋진 선물을 주었다. 그해 풍력발전 아이디어로 공무원제안은상을 받은 체신공무원 교육원의 신찬(辛瓚)교사를 청와대로 불러 자세히 브리핑을 들은 후, 한국과학원의 연구개발 팀에게 『엇섬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라』고 지시했다.개발 팀은 74년 2kw용량의 풍력발전기를 세워 전기 불을 밝혀주는데 성공했으나 75년 여름 몰아친 태풍에 그만 고장이 나고 말았다. 지금도 그 흔적으로 엇섬에는 녹슨 철탑이 앙상하게 남아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제작이 고도의 하이테크인 것을 새마을 사업쯤으로 생각했으니...』라고 신씨는 당시의 실패를 회고했다. 어쨌든 신씨는 그후 20여 년을 바람에 미쳐 살았다. 풍력기술의 정보를 얻으려 세계를 누비며 다녔고 기술개발에 정력과 재산을 쏟아 넣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바람성질(風況)에 맞는 한국형 풍력발전기를 개발한 신씨는 새만금지역에 터빈을 세우기 위해 전라북도와 협의중이라고 한다.

기후변화, 자원고갈, 반핵무드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의 의존도를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예견한 선진국 정부들은 태양열 풍력 지열(地熱) 조력(潮力) 폐열 연료전지 등 소위 대체에너지의 개발 지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추세를 보면 선진국들은 일단 「바람」을 타는 쪽으로 가고 있다.

덴마크 독일 스페인등 유럽국가들의 풍력발전은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영국까지 가세하여 이들 국가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총 전력수요의 10%를 풍력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덴마크를 보면 이미 올해 10%목표를 달성했고 2030년까지 이를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에 찬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 경제규모가 큰 영국도 2030년까지 40%목표를 설정했다. 유럽에 몰아치는 반핵바람을 대서양의 편서풍으로 흡수하는 에너지 전략이다.

70년대 석유위기를 겪었던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에 거대한 풍력단지를 여러 곳에 만들어 세계 제일의 풍력국가를 자랑했다. 그러나 근래 정부가 장려책에 소홀한 사이 독일이 작년부터 설비용량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미국은 자존심 손상과 함께 닥쳐올 환경외교의 카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6월 리처드슨 에너지 장관은 『풍력을 2002년까지 현재의 2배, 2010년까지 4배로 생산하고 2020년에 중심적 대체에너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정부의 선언은 구체적 지원입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선진국의 바람타기 경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계 12위 에너지 소비국이고 4위 석유수입국이다. 석유 값이 춤 출 때마다 경제는 요동친다. 그러나 에너지 효율성은 선진국에 한참 뒤떨어지고 소비심리는 겨울에도 거실에서 러닝셔츠만 걸칠 정도로 절약에 둔감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대체에너지 정책은 혹평하면 액세서리로 밖에 안보인다.

제주도의 동쪽끝 행원리 바닷가에는 다섯개의 하얀 색 풍력터빈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제주도가 정부의 보조를 받아 덴마크에서 수입해 설치한 풍력발전기 시범단지의 풍경이다. 하나 하나가 약 600kw의 용량을 가진 발전소들이다. 초속 11㎚ 상의 바람만 불어준다면 6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풍향에 따라 날개방향이 조절되고 초속 22㎚이상 태풍에는 스스로 멈춘다. 첨단소재와 첨단제작기술을 요하는 하이테크 구조물이다.

정부기준으로 풍력은 아직 경제성은 낮다. 그러나 대체에너지가 처음부터 상업성을 가질 수는 없다. 덴마크 해안과 캘리포니아의 알트몬드 고개의 거대한 풍력단지는 정부의 지원 없이 가능할 수가 없었다.

바람 부는 언덕위에 세워진 풍력터빈에서 「그린 에너지」가 생산되고 그 밑의 초지와 농장에서 무공해 농산물이 자라는 목가적 모습이 21세기형 선진국 전원풍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람타는 선진국을 구경만 할때는 아니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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