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통합문제로 사회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정부가 2000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을 6개월간 연기하려고 하는데 대해 의보통합을 주장해온 시민사회 단체들과 야당은 정부·여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연기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는가 하면 의보통합을 반대해온 한국노총과 지역의료보험조합은 6개월 연기는 선거를 의식한 미봉책일 뿐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80% 이상 될 때까지 2년정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미 실시하기로 한 의료보험의 통합을 선거를 의식해 연기하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통합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긴 하나 이 문제는 통합 찬성이나 반대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의료보험을 통합하면 보험료 부과의 공평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관리운영비를 절감하고, 보험재정악화의 위험성을 줄이며, 보험급여의 수준을 확대하는 장점이 있다. 통합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불과 23% 밖에 안 되는 지금 지역의보와 직장의보를 통합할 경우 소득이 낮은 봉급생활자가 소득이 높은 자영업자의 보험료를 부담하게 되어 부당하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한 삶을 실현키 위한 문제를 놓고 계층간의 이해가 엇갈려 서로 다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의료보험이란 것이 사회보장적 의미를 담고 있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돕는 것이 불가피한데도 소득이 낮은 사람끼리 서로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다투고 있으니 더욱 딱하다. 설사 소득이 같아 같은 액수의 보험료를 내더라도 그 혜택은 다를 수 있는 것이 의료보험이다.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의료보험문제를 놓고 이런 식으로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없도록 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문제를 「보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즉 모든 국민의 의료문제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보험과 사회보장제도는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험은 국민의 의료비를 보험가입자가 부담하는 것이고, 사회보장제도는 국민의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문제는 당연히 사회보장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정보문명시대를 맞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나 의식주와 의료, 교육 등 국민의 기본생활이 충족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국민이 병이 나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바,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의료비를 「보험」으로 충당할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예산으로 충당해야 한다. 보험이든 사회보장예산이든 국민이 부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사회보장예산으로 충당해야 공평과세를 통해 계층간의 대립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문제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
소득의 20%가 넘는 돈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면서 국민의 건강문제도 하나 책임져주지 않는 국가라면 그런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약 세금의 액수가 부족하다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 지금 의료보험료 총액이 연간 약 5조6,000억원인데 국가예산의 7% 정도 된다. 재벌기업 하나에 지원하는 액수보다 적다. 6조원의 돈을 들이지 않아 국민 상호간의 대립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여·야 정쟁의 불씨가 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실추시키는 일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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