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변용. 정형없는 이 스타일은 그 어느 것과도 잘 접(接)붙는다. 트립합은 힙합과 테크노의 이종교배의 산물로 북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영미권으로 번져 나가고 있는 음악 장르.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 이정현은 국악과 랩, 테크노 DJ 달파란은 「뽕짝」으로 테크노의 한국적 변용의 새 가능성을 보여준다.◆이정현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꽃잎」이 96년 개봉했을 때 정말 꽃잎처럼 아련한 소녀가 나왔다. 80년에 태어난 이정현. 영화에서는 꽃처럼 가냘펐지만 실상 소녀는 당시 기자들 앞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 이데아」)를 오리지널 뺨치게 불러 젖혔던 끼 넘치는 맹랑한 소녀였다.
이제 소녀가 테크노 가수로 변신, 첫 음반 「Let's Go To My Star」를 들고 나왔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중인 그녀는 올 봄 「구피」의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에 얼굴을 비쳐 화제를 모았다. 그녀가 압구정동 테크노 클럽에서 밤새도록 머리를 흔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이어 「조PD」의 뮤직 비디오 「Fever」에서 「끼」를 발산했다. 내친 김에 테크노 가수로 변신했다.
타이틀 곡은 「와」. 테크노가 국악과 결합한 독특한 발상이다. 국악인 이태백이 아쟁을 연주, 어쿠스틱(전자음이 아닌) 악기를 쓰지 않는 테크노의 법칙을 깼다. 그러나 다소 냉소적인 발성과 반항기가 다분한 목소리가 얹혀지면 세련된 테크노로 변신한다. 「사실이 아니길 믿고 싶었어/널 놓치기 싫었어…/독한 여자라 하지마/오 사랑했으니 책임져」. 「책임져라」는 말을 빼고 보면 요즘 흔한 사랑 노래와 다를 바 없어 다소 실망스럽지만 노래 자체가 갖고 있는 흡인력은 「테크노는 장사가 안된다」는 편견을 깰 것 같다.
랩은 이정현의 특기 중 하나. 조PD가 작사 작곡한 「I Love X」에서는 사회비판적 가사들을 신들린 아이처럼 쉴 틈 없이 쏟아낸다. 소녀에서 요염한 처녀로 변신한 이정현은 테크노를 통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수로 꼽힌다. 「꽃잎」의 이미지를 아끼는 팬에겐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었을 뿐. 그녀는 이미 가장 파괴력이 있는 여자 신인 가수로 발을 내디뎠다. 스타 예감이다.
◆달파란
본명은 강기영. 「삐삐 롱 스타킹」의 멤버로 TV 방송에서 카메라에 침을 뱉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미국식으로 욕을 해 방송출연정지를 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98년 「휘파람별」이라는 독특한 테크노 음반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달파란」이란 이름을 가졌다.
영화 개봉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영화 「거짓말」은 사운드 트랙이 먼저 대중 곁으로 다가간다. 거기에는 한국형 테크노 음악이 들어있다. 「잘나도 내청춘/못나도 내청춘/청춘이란 불길이더냐/꽃같은 청춘이더냐/청산은 나 절로/유수는 네절로/사양하지 말고 놀아나 보세/이밤이 다 가도록/아 오늘밤도 랄랄라~노래를 부르자」(「청산유수」). 고속버스에서 아주머니들이 신나게 장단맞춰 부르는 메들리 테이프에 흔히 들어있는 가사. 「신바람 이박사」라는 뽕짝메들리를 달파란은 테크노 사운드와 결합했다. 사이키델릭한 테크노 사운드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흘러가는 뽕짝은 아주 독특하고 새로운 한국적 미감을 갖고 있다.
「휘파람 별」에서 이미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를 샘플링한 「휘파람별의 외계인」을 선보였던 달파란은 『전혀 다른 것을 배합하면 슬프면서도 재미있고 새로운 사운드가 나온다』고 얘기한다. 「거짓말」에는 언더밴드 볼빨간의 「육체의 환타지」를 샘플링한 곡 등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9곡이 들어있다. 하지만 뽕짝의 경우 저작권 문제가 복잡해 샘플링 작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소리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달파란의 테크노 실험은 이제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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