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 지점장 격무 자살지난 6일 서울 동작대교에서 투신자살한 모 외국계 은행 명동지점장 안모(36)씨는 국내 최연소 지점장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촉망받던 금융맨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와 실적경쟁은 그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87년 이 은행에 입사한 안씨는 탁월한 업무능력을 발휘, 지난해 국내 최연소로 지점장에 올랐고 올 3월에는 요직인 명동지점장에 취임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직위가 올라갈수록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9월초부터 지점 개점 10주년 행사와 실적올리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한달넘게 불면증에 시달렸고 스트레스로 인한 위염으로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안씨의 부인은 『남편이 평소 「실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이는 등 강박관념에 시달렸다』며 『나이 많은 부하직원과 갈등까지 겪으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유서에서 『나는 은행을 사랑했다. 그러나 은행을 위해 일한 결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며 『가족들을 보살펴 달라』고 은행측에 호소했다. 안씨는 또 초등학생 아들과 여섯살난 딸에게 『얘들아 미안하다. 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빠처럼 바보같은 삶은 살지 마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에대해 은행측은 『안씨의 죽음이 안타깝다』면서도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정녹용기자
■외국계 은행 비인간적 처우 물의
모 외국은행 명동지점장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외국계 은행의 과도한 실적경쟁 유도와 비인간적인 처우, 가혹한 인사관리 관행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C은행 노동조합은 14일 명동지점장 안모(36)씨의 투신자살사건과 관련, 『직원들은 상상을 초월한 강제근로와 임금착취, 질시에 가득찬 비정한 인사관리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선진은행을 자부하는 외국계은행이 실제로는 국내은행보다 훨씬 비인간적』이라고 은행측을 비난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 은행은 매달 서울지역 전지점에 대한 실적평가를 통해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긴 뒤 상위5개 지점이 하위5개 지점을 지도하게 해 지점간 실적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노조측은 『대부분 직원들이 정규 근무시간외에 밤늦게까지 수당 등 인센티브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하도록 강요받는다』며 『자살한 안씨도 9월들어 하루 1~2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미국계 B은행 직원 이모씨는 『10년을 다녀도 연봉이 3,000만원이 안되는 경우가 많고 호봉도 올라가지 않는다』며 『자녀학비나 의료비 보조 등 복리후생 수준이 국내은행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C은행 관계자는 『노조와해를 위해 8% 임금인상안에 합의한 후 비노조원에게는 8.5%를 인상해 줬다』고 밝혔고 H은행은 비노조원에게만 수당 등 인센티브를 적용하다 노조로부터 강력히 항의를 받기도 했다.
최근 미국계 C은행 간부는 한국인 노조원들을 『애니멀(animal·짐승)!』이라고 불러 물의를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계 A은행의 한 노조원은 『지난 추석연휴때 한 간부가 「추석선물이니 껌이나 먹으라」며 노조사무실에 껌상자를 돌리고 비아냥거렸다』며 『외국계 은행의 한국인 근로자 비하와 비인간적인 대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씨티은행 노조가 9월15일부터 3일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를 통해 직원 511명을 상대로 직원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74.5%가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회의 방용석(方鏞錫)의원도 14일 중앙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씨티은행이 지난 6년간 정규직 고용을 회피한 채 불법 근로자 공급업체로부터 파견근로자를 공급받아 사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은행 노조관계자들은 『외국은행들이 선진 경영기법을 빌미로 한국적 정서를 무시한 채 직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고 교묘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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