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권력구도는 「대통령- 총리- 군부」의 3각 축을 정점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 왔다. 특히 4번의 쿠데타로 집권 경험을 가진 군부는 정치불개입 선언을 한 80년대 이후에도 대통령과 총리간의 힘겨루기에서 「비토 그룹」 역할을 하며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58년과 77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유브 칸과 지아 울 하크 장군의 통치기는 말할 것도 없고 88년 지아 울 하크 대통령과 군부 핵심세력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물러난 이후에도 군부의 역할은 감소되지 않았다. 지아 사후(死後)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한 베나지르 부토총리는 간선으로 선출된 굴람 이샤크 칸 대통령과 심각한 권력투쟁 양상을 보였다. 칸 대통령은 결국 군부의 힘을 업고 내각해산권과 군참모총장 지명권을 틀어쥔 뒤 90년 부토 내각을 해산했다. 이어 등장한 나와즈 샤리프 총리도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에 항거하지만 당시 와히드 참모총장이 대통령 편에 서는 바람에 93년 실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97년 재집권에 성공한 샤리프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샤리프는 당시 파루크 레가리 대통령을 무력화하기 위해 제한지르 카라마트 참모총장을 끌어들여 사임을 얻어냈지만 다음해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총리 해임권을 박탈하고 군부도 정치적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카라마트마저 해임하면서 권력 집중을 노렸다. 자칫 권력의 핵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군부의 위기감은 이미 이때부터 잉태됐다는 분석이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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