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과 기초과학도들의 집념」 14일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F램에 사용되는 획기적인 신소재 「비스무스란타늄타이타늄(BLT)」 개발을 발표하는 서울대 물리학과 노태원(盧泰元·42)교수의 뇌리엔 가시밭길같았던 지난 8년의 세월이 먼저 스쳐갔다.89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처음 가졌던 실험실은 다른 교수들이 농반진반으로 『탁구대 놓고 한 경기 할까』라는 말을 건넬 정도였다.
무(無)에서 시작한 연구와 실험, 기초과학에 대한 무시, 없는 것이 더 많은 연구장비. 하지만 그 무엇도 노교수와 젊은 물리학도들의 꿈과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노교수 연구팀이 F램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91년 F램 소재로 새로운 BST 물질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세계의 수백여 연구팀이 같은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시각,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BST 소재는 정보의 입출력이 반복되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피로현상」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국내외 연구팀이 피로현상을 없애는 방법을 찾느라 세월을 허비하는 동안 노교수팀은 피로현상이 생기는 원인을 물리학적으로 규명하는 모델연구에 들어갔다. 순수기초과학 연구부터 시작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부족한 실험장비로 이 연구소, 저 실험실에 아쉬운 소리를 한 7년의 기반연구. 98년 11월 연구팀의 박배호(朴培昊·28)씨가 『비스무스타이타늄에 란타늄이란 물질을 합성하면 피로현상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해 냈다.
박사과정의 강보수(姜保守·26)씨와 부상돈(夫相敦·35)박사는 이 과정에서 신물질과 반대의 성질을 가진 모델을 연구해 시행착오를 줄였다.
우리나라를 21세기 F램 원천기술을 가진 반도체강국으로 우뚝 서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론이 신소재 개발로 응용되는데는 불과 3개월. 미국 벨연구소에서 F램 관련 연구를 했던 이재찬(李在讚·38·성균관대 재료공학과 부교수)교수도 참여해 실험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교수는 『과학기술재단에서 매년 2,000만원을 꾸준히 지원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이론 완성 후 3개월만에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신소재 개발로 이어졌다는 것은 기초과학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얼마나 큰 성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F램이란?
정보를 기억하는 소자에 강유전체 물질을 사용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현존하는 각종 메모리반도체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 개념은 30여년전부터 알려졌지만 기술상 난점으로 90년초에야 미국에서 개발됐고 전원을 꺼도 데이터를 기억하는 특성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기술력을 좌우한다. 현재 시판중인 것은 256K 용량.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7월 PZT강유전체를 이용, 업계 최초로 4M용량을 개발했으며 내년께 상용화할 계획이다. F램은 휴대용PC나 이동통신 단말기인 스마트카드 등에 이용되고 있으며 차세대 정보통신분야의 수요증가에 따라 21세기의 「황금알 시장」으로 꼽혀 선진 반도체업체간에 치열한 개발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평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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