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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천천히 그림읽기, 인문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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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천천히 그림읽기, 인문학의 위기

입력
1999.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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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현대의 화가는 낯 모르는 감상자나 구매자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은 화랑이나 경매를 통해 팔려나간다. 하지만 15세기에는 사정이 달랐다. 지금 명화라고 불리는 대단한 그림들에는 반드시 주문자가 있었다. 교회나 국가 또는 왕이나 귀족들. 계약에 따라 주문자가 원하는대로 솜씨 좋은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런 주문은 어떤 주제의 그림을 어떤 풍으로 그려달라는 정도를 넘어서 반쯤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수정하라는 「지시」의 수준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습속이 또렷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란 책으로 성가를 올렸던 진중권씨(독일 베를린자유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와 독일 훔볼트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조이한씨가 함께 쓴 이 책은 서양미술을 속살을 파헤쳐 가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은이들은 100여편의 그림을 곁들여 근·현대 서양 회화를 그림의 표현양식은 왜 변할까 화가에게 숨겨진 무의식 세계 여성화가들이 느끼는 육체의 미학 그림에 담겨진 요란한 의미의 움직임 전통의 아름다움을 거부한 현대 미술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런 분석의 밑바탕에는 도상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여성주의, 기호학 등의 해석 방법론이 자리잡고 있다.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여 가며 그림의 형식과 내용을 대비하고, 화가 개인의 심리와 사회 현상을 연관시키고, 대안 미술의 흐름을 짚어주어 서양미술을 보는 눈을 키우는데 알맞다. 웅진출판 발행. 1만원.

■인문학의 위기 /왕빈빈 등 지음

인문학이 구석에 몰려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발달하면서 역사를 좇아올라가고, 정신을 탐구하는 인문학의 권세는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인문학의 전통을 갖고 있는 중국에서도 대중에 영합하는 문학, 인문학의 위기감을 뜨겁게 비판하는 소리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통일운동가 백기완씨의 딸인 백원담씨가 엮어서 번역한 이 책은 93년 중국에서 논란이 됐던 「인문정신 논쟁」과정을 소상히 보여주고 있다. 이 논쟁은 그 해 여러 간행물에 중국 문학의 상업화와 대중화, 인문학과 인문정신의 위기에 대한 비판과 좌담이 실리면서 시작했다.

논쟁의 초기 흐름은 문학. 쾌감만을 추구하여 대중의 입맛에 아부하면서 타락하고 있고 작가와 예술가가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게 터져나왔고, 그후 논쟁은 「인문정신」을 중심으로 「새롭게 찾아야 할 인문의 길은 있는가」 「중국의 전통 속에 인문정신이 있었는가」 「인문정신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 원론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주제로 발전했다.

비판과 반론의 대결은 어디에서나 모습이 비슷하다. 중국도 인문정신의 회복을 주장하는 지식인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간의 대결이다. 인문학의 상품화와 서양이론에 대한 맹종이 한 축을 이루고 인문정신이란 것이 있기나 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또다른 논의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결론은? 우리가 그런 것처럼 여기서도 답은 없다. 인문정신이 급격한 변화의 와중이라는 점, 그 흐름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엿보기 정도로 삼을 만하다. 푸른숲 발행.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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