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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치'를 제대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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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치'를 제대로 해야

입력
1999.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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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야말로 「인치(人治)」를 제대로 하는 나라이다』 연구실을 나서다 만난 선배교수가 던진 말이다. 맞다.미국 대통령은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적임자를 수소문해 전권을 위임하고 일을 맡긴다. 그러다 성공의 결실을 거두면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정책을 구상한 그 인사에게 화려한 조명을 비추고 공을 나누어준다.

클린턴은 북한핵 위기가 터진 94년에는 갈루치를 「전담대사」로 내세워 제네바 핵타결을 이끌어냈고 미사일 사태가 벌어진 97년에는 페리를 「정책조정관직」에 앉혀 북미대화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편 언론이 노근리 학살사건을 파헤쳐 클린턴 인권외교에 한미 혈맹관계까지 훼손되고만 지금은 국방부 산하에 진상조사팀을 구성해 그 상흔을 달래려는 적극적 자세를 취한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갈루치는 핵전문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페리는 위기 시에 한미일 공조체제를 더 한층 확고히 다진 외교관 직함을 명함에 하나 더 새기게 되었다. 한편 클린턴은 자기 대신 북한에 맞서 강온전략을 구상할 수족을 확보하면서 다른 보다 큰 현안에 시선을 돌릴 시간을 벌었다. 게다가 「권한에 비례해 확대되는 것이 책임」이고 「책임이 늘어난 만큼 혜택 역시 커진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 야심찬 전문가에게 참여동기를 불어넣고 일할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라는 국가이다. 위기때 키워놓은 전문가 하나하나는 이론과 경험을 두루 갖춘 인적자원이 되어 국가능력을 키워준다.

이처럼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면서 공동이익을 달성하기는 대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 명문대학에서 재단과 총장은 기부금을 모금하는 「후원회」이지 교수 위에 군림하는 「오너」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 분담이 재단의 위상을 격하하거나 총장의 격을 끌어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이다.

교수가 이론을 개발하면 재단과 총장은 연구 실적을 자선단체의 구미에 맞게 지적 상품으로 재포장해 매년 수억달러의 기부금을 모금하고 그 자금을 다시 연구자 당사자에게 투자한다. 그렇다보니 교수마다 재단과 총장의 바람대로 실적을 올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미국적 인치의 극치는 역시 재계가 보여준다. 미국 투자자는 회사를 인수하기 전에 먼저 재계 구석구석을 뒤져 믿을만한 「사람」부터 찾는다. 적임자가 나오면 거절할 수 없게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경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할 자세가 되어있다. 그가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회사를 키우면 결국 최대 수혜자는 투자자 자신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정계·재계·학계 어디서든 「사람」을 중시하고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인치의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한 인치는 미국식 인치가 아니다.

과감한 권한 위임이 없다. 「능력」을 일차적 잣대로 삼아 일꾼을 발탁하려는 의지 역시 부족하다. 오히려 조직마다 권리와 권한을 독점하는 「오너」가 있다. 그는 무엇보다 통제가 우선이다. 자기 말만을 듣는 「예스맨」을 자리에 앉혀 조직을 장악하고 사사건건 정책에 끼여들려한다. 그러다 성공하면 그 「공」을 혼자 독점하고 실패하면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한국이다. 정당은 선거때마다 인물난에 시달리고 대학은 기부금이 걷히지 않는다. 재벌은 경영실패로 워크아웃을 당하고 수많은 노동자는 거리로 내쫓길 운명에 놓여있다.

「오너」문화가 있는 한 인재는 모이지 않고 돈은 걷히지 않는다. 개혁은 사회 구석구석에 처진 바로 그 한국적 인치의 장벽부터 걷어치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너가 그 폐해를 덮어두고 막연히 애국심과 애사심 및 애교심에만 호소한다면 국민은 오너를 거저 먹으려는 「놀부」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김병국·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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