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번째 세계시민에게 보내는 편지코피 아난 등 지음, 이창식 옮김
들녘 발행, 7,000원
세계 인구가 12일로 60억 명을 돌파한다. 물론 통계상의 이야기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하루에 37만 명 꼴로 아기들이 태어난다고 보고 그 계산으로 지구촌 인구 60억 시대를 선언했다. 「Y6B」(Yes Six Billion)이다. 인구학자들은 이런 인구 과잉을 「Y2K」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 천 년이 상징적인 의미라면 세계 인구 문제는 실질적이고도 닥친 고민거리다.
유엔은 인구 60억 시대 개막에 맞춰 이색적인 책을 기획, 출판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 14명에게 새로 태어나는 아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묶은 「60억번째 세계 시민에게 보내는 편지」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에어리얼 도프만(아르헨티나), 코니에 팔멘(네덜란드), 푸라무디아 아난타 투르(인도네시아), 살만 루시디(인도), 메이어 살레브(이스라엘), 부치 에메체타(나이지리아), 죄르지 콘라드(헝가리) 등이 글을 썼다. 이 메시지에는 지구가 안고 있는 현실의 갖은 문제들을 우회해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작가 메이어 살레브는 60억번째 아기에게 차라리 돌고래가 되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굶주려서 죽고, 사형 집행인과 독재자와 순교자들이 공존하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아인슈타인이 세기를 대표하는 인물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자비심과 윤리를 밀어내고 정치적 수정주의와 종교적 광신주의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넌 차라리 돌고래가 되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라고.
「60억 인구가 바글거리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쥐 실험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은 인도네시아 작가 아난타 투르의 말이다. 그는 아기에게 「만약 네가 영혼의 창을 통해 바라보지 않고 정처없이 방황한다면 강한 정신이나 올바른 삶의 태도를 절대로 얻을 수가 없단다. 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늘 겁을 집어먹고 부끄러워하게 될 지도 몰라」고 충고해 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인 안트예 크록은 「아프리카의 아이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자장가」를 지었다. 「나는 너를 가난과 총알과 폭력과 에이즈로부터/ 침묵과 어리석음과 부패한 인간들로부터 지킬거야/ 나는 널 수백 만의 난민들로부터/ 기아와 갈증/ 눈물 바다와 아픈 슬픔/ 마구 난도질당한 꿈으로부터 건져낼거야」면서 그는 「운다/ 지난 세기들과 그들의/ 패배하고 절단된 생존자들을 위해/ 불의와 탐욕에 눈 먼 자들을 위해 운다」고 말했다.
21세기를 이끌어나갈 다음 세대가 모순과 고난으로 가득 찬 세계의 절망을 직시해야 한다는 글이 책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왜 희망이 없겠는가. 크로아티아 소설가 두브라부카 우그레시치는 「앞으로 태어날 60억 번째의 세계 시민인 당신 역시 문학과 창조, 매력, 품격, 독창성, 인류애, 상상력, 훌륭한 멋 등 옛날 식으로 말하면 도서문화를 관장하는 신령님을 위해 슬리퍼를 남겨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쓰러져 죽어가는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죽지말라』고 말하자 목숨 다해가던 그가 서서히 일어나 걸어가는 광경을 보여주었던 페루 시인 셰사르 바예호의 시처럼, 60억 인구의 이상은 질시와 폭력을 넘어 영혼 속에 하나가 되는 것일터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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