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고교 수학·과학경시대회가 기초과학의 영재를 조기발굴·육성한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명문 의대나 공대의 고교장추천입학을 노리는 수험생들에게 「제2의 입시」가 되고 있다. 더구나 경시대회를 주관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출제 채점 등 시험관리를 사실상 각 학과에만 떠맡겨 무시험전형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가장 큰 문제는 허술한 출제자 관리. 입시와 관련된 시험은 출제자의 신원을 가리고 격리시키는 등 대외접촉을 차단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시대회는 출제자가 그 대학 관련학과 교수로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알아낼 수 있다.
실제 경시대회 전문학원은 유명대학 출제위원 밑에 있는 대학원생을 강사로 채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학원가에는 이들이 경시대회 직전인 여름방학을 이용해 예상문제풀이에 출강하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한해 경시대회 입상자 90%이상을 배출하기도 했던 서울 강남 B학원 관계자는 『강사는 과목별로 4~5명인데 S대나 대전 K대 박사과정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S대 화학과 대학원생 김모씨는 『출제위원의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과외나 학원강의를 받으면 문제경향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며 『교수님이 농반진반으로 「연락온 학원은 없느냐」고 할만큼 유혹이 많다』고 털어놨다.
부실한 채점관리도 문제. S대는 이번 국감에서 수학경시대회 동상(銅賞)이상 입상자 47명의 답안지중 35명의 답안지가 채점자의 도장날인 없이 수정된 사실을, K대와 또다른 K대도 채점과정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인옥(朴仁玉)사무처장은 『경시대회가 조작되고 있다는 제보를 여러 번 받았다』며 『채점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고 점수를 매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교육부 관계자도 『수학·과학 경시대회 입상 학생중 3분의 1만 기초과학분야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모두 명문 의대와 공대에 진학한 과학고도 있다』며 『각 대학은 경시대회 관리를 철저히 하고 기초학문분야에 진학하는 경우에만 수상실적을 입학사정에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S대 관계자는 『교육부와 대학본부는 최소경비도 안되는 1억여원의 예산만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며 『담당 교수들만 울며 겨자먹기로 떠안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시대회 시기가 학부모의 민원으로 한달 미뤄지기도 하는 등 학부모들의 외압이 크다』고 털어놨다.
현재 산업대와 교육대를 제외한 4년제 대학 158개의 절반에 가까운 78개 대학에서 모두 119개의 경시(경연)대회를 열고 이중 102개 경시대회는 특기자 선발이나 장학금 지급 등 그 결과를 입시에 반영하고 있지만 31개 경시대회만 대학본부 차원에서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있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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