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환란사태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취업재수생, 또는 「상실세대」의 불운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신규 채용이 거의 없었던 지난해, 어쩔 수 없이 「취업재수」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이들이 올해엔 기업체들의 「취업재수생 기피」라는 또다른 장벽에 부딪쳐 한숨짓고 있다.올 2월 K대를 졸업한 이모(27)씨는 지난해 일찌감치 취업을 포기하고 1년을 기다려 왔다. 첫직장의 의미가 큰 만큼, 아무데나 들어가기 보다는 경기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였다. 본격적인 취업시즌이 시작된 9월이후 증권회사등에 3번의 입사시험을 본 이씨는 자신의 판단이 착각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면접때마다 『지난해에 왜 취업하지 못했나』『졸업하고 그냥 집에서 놀았나』는 질문에 궁색함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외국인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가 7월에 정사원발령을 받지 못한 정모(24·여)씨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취업준비기간도 없었을 뿐더러 『오죽 못났으면 발령을 못받았느냐』는 시선이 두려워 인턴복무기간을 숨겨야 하는 형편.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넣어보고 있지만 면접을 청해 오는 회사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적다. 정씨는 『이력서란에 지난 1년을 빈 공란으로 남겨 두자니 자괴감이 인다』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문제는 이들과 같은 처지의 취업재수생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 전문가들은 IMF이후 대졸취업률이 50%에 훨씬 못미쳤던 점을 들어 현재 약 30만명의 취업재수생이 방황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들이 20만명에 달하는 내년 2월 졸업예정자들과 바늘구멍같은 취업문을 놓고 경쟁하기에는 「재수생」이라는 핸디캡이 너무 크다.
지난해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불가피하게 취업기회를 놓치는 대졸자들이 양산되자 취업연령 제한을 완화해 줄 것을 일선 기업체에 권고했다. 하지만 L정보통신 인사과장 김모(37)씨는 『연령제한폭을 넓혀도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조건이라면 졸업예정자를 택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선한 조건을 갖춘 취업예비군들이 줄을 서 있는 마당에 굳이 재수생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C투자자문회사의 윤모(36)과장 역시 『면접관들이 취업재수생들에게 우선적으로 묻는 것은 졸업후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라며 『이때 확실한 자기계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합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때문에 지난 1년동안 절치부심해온 취업재수생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클 수 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졸업후 지금까지 취업준비를 해온 Y대출신 신모(26)씨는 『환란의 직접적 책임도 없는 우리들이 실업고통을 당한데 이어 이제는 문제아 취급까지 받는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고 좌절감을 토해냈다.
노원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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