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이런 날이…, 꿈만 같습니다. 이름 석자도 못쓰고…, 남들이 알까봐 늘 혼자였던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수도학원 한글날 기념식에서 「선생님께 드리는 글」을 읽는 이오조(李五組·71)씨. 아직 읽는게 서툴지만, 며칠밤을 새워 읽어 이제는 외우다시피한 원고였다. 이씨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서툰 한글실력 탓이 아니었다.
경북 양산에서 6남매중 막내로 17살에 시집을 간 이씨는 20년전 남편을 따라 두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젊은 시절 어려운 살림에 고구마장사, 김밥장사, 안해본 것이 없는 이씨는 이제 강남에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두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출가까지 시켰다.
하지만 가슴에 남은 한이 하나 있었다. 배움의 시기를 놓친 이씨는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것. 장사를 하면서도 영수증을 써줘야 할 상황에선 글을 몰라 종업원에게 맡기고 주방으로 숨던 기억을 떨칠 수가 없었다. 늘 창피하고 서러웠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친가와 시가부모를 모두 모셨기에 배움에 시간을 쪼갤 엄두를 내지 못했다.
3년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씨의 나이는 이미 고희를 바라봤지만 용기를 내 한글교실을 찾았고, 새벽6시부터의 수업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이날 행사에선 이씨와 같은 314명의 노인들이 참석해 기쁨을 함께 했다. 그동안 쌓여왔던 서러움이 오늘의 감격과 교차해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행사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까지는 위인전이나 동화 밖에 읽어보지 못했어요. 조금만 더 공부해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서적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의지는 여느 석학들의 그것 못지않게 순수하고 뜨거웠다.
이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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