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인 한국은행의 추경예산 191억4,000만원이 사실상 확정됐다. 한은의 예산승인권을 가진 재정경제부가 이미 승인하여 금융통화위원회의 확정의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추경예산중 인건비는 63%인 121억원이고, 나머지는 국제금융센터 출자금과 전산화등 기타경비다.추경예산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산을 짜고 난 후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홍수 태풍등 예상치 못했던 자연재해와 IMF체제 이후 실업자 급증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한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직원들에게 줄 봉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권력을 동원하여 돈을 찍어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한은의 인건비가 바닥난 이유는 지난해 재경부가 한은 예산안에 대해 인원 및 임금을 추가감축하라며 20%를 삭감했으나, 한은은 노사 미합의등을 내세워 임금을 지난해 수준으로 지급해 왔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 2월 금통위의 의결을 거쳐 올해 인건비는 686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34.5%(98년중 인원삭감분 포함) 감축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은은 이같은 감축규모는 한은 창립이래 최대이며, 이는 외환위기로 야기된 경제적 고통을 분담하고 구조조정과 경영혁신 노력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한은은 환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외환위기와 관련, 당시 이경식총재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기도 했다. 특히 한은은 지난해 4월 한은법 개정으로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아 독립된 중앙은행으로서의 과감한 변신을 요구받았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지난 3월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제국장등을 외부 공모하는 등 50년 창립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혁신에 나선다고 밝혔다. 전철환 한은총재는 지난 6월 한 인터뷰에서 『한은만큼 말없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한 곳은 공기업 공공기관 가운데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외부 공모는 무산되는 등 인사개혁과 조직혁신은 선언에 그쳤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물가와 금리등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제한된 여건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하지만, 한은법 개정이후 국민들이 기대했던 수준에는 못미쳐 실망을 주고 있다.
한은의 존립이유는 통화가치의 안정이다. 그럼에도 사상 첫 추경 편성 목적이 발권력을 앞세운 제 몫 챙기기 여서 한은은 개혁의 무풍지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또 물가안정을 통한 국민경제의 파수꾼이라는 임무와는 정반대여서 결국 국민들에게 IMF체제의 고통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같은 편법적인 추경을 재경부가 승인한 점도 석연치 않다. 재경부는 삭감할 당시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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