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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소니 창업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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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소니 창업주 이야기

입력
1999.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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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직후 도쿄(東京) 중심지 작은 사무실에서 7,8명의 젊은이가 먹고 살 방도를 의논하고 있었다. 배고픈 사람이 많으니 단팥죽 장사를 하자, 폐허가 된 땅을 이용해 어린이 골프장을 만들자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좌장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의 의견대로 하던 일을 하자는 결론이 났다. 하던 일이란 전쟁중 나가노(長野)현에서 통신기기를 만들어 군에 납품하던 일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소니의 모태 도쿄통신연구소다.■이부카가 단파수신이 가능한 라디오 개발에 성공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한 청년이 연구소를 방문한다. 아이치(愛知)현에서 가업인 양조장 일에 파묻혀 있던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였다. 이부카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도쿄통신공업회사를 차렸다. 둘은 전쟁말기 군부가 이끌던 열선유도병기 개발팀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의기가 투합했다. 와세다대학 출신인 이부카는 기술개발, 오사카대학 출신인 모리타는 재정과 영업활동을 맡았다.

■오늘의 소니를 있게 한 트랜지스터 개발 일화는 규제를 뛰어넘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미국 웨스팅 하우스로부터 트랜지스터 특허 사용권을 얻었으나 통산성 허가를 못받은 둘은 허가를 얻어내는 조건으로 특허사용 계약을 체결, 소형 라디오 개발에 성공했다. 전략상품인 컬러 TV 수출을 위해 모리타가 미국으로 이주, 공격적으로 시장개척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개성과 창의성을 자산으로 여기는 기업문화가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니다.

■20년 이상 사장과 회장으로 일해온 모리타는 93년 뇌일혈로 쓰러져 요양생활을 하다 3일 폐렴증세 악화로 타계했다. 이부카가 간지 2년만이다. 이부카는 99억엔의 유산을 남겼는데, 유족은 현금이 없어 상속세 51억엔을 물납했다. 모리타의 유산은 얼마인지 알려진 것이 없으나 그 정도일 것이라 한다. 재벌들이 불법·편법으로 개인재산을 불리고, 그것을 물려주면서 또 상속세를 포탈하는 나라에서는 까마득히 먼 나라 일처럼 들리는 얘기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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