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 말에만 대답하시오』『예, 아니오만 말하시오』우리나라 법정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재판장이나 검사, 또는 변호사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다. 피고인과 피의자는 물론, 말을 들어보자고 불려간 증인과 고소인도 하고싶은 말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하소연해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으니 재판이란 그런 것이려니, 체념하게 된다.
법정에서 하고싶은 말을 못하기는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변호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준비서면 제출합니다』하는 말과 함께 변론문을 재판부에 내는 일이다. 변론을 서면으로 대신하게 하기 때문에 할말이 많아도 발언권이 없다. 시간절약을 위해 법정변론을 못하게 하고, 나중에 변론문 읽는 것으로 대신하기 때문이다.
사건 당사자에 대한 신문도 미리 제출한 신문서에 들어있는 것만 해야한다. 신문서에 적힌대로 물으면 입회서기는 거기에 o x △ 표시만 한다. 긍정은 o, 부정은 x, 모른다는 △다. 말할 때의 표정이나 동작, 상대방의 반응 등을 살펴 입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치중하는 재판이 된지 오래다. 미제사건이 쌓이면 무능판사로 찍히게 된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경찰에서 송치되어 오는 산더미같은 사건기록에 파묻혀 허덕이다 보면, 관계자를 불러 사실여부를 확인해보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검사들 스스로가 「사건 지게꾼」이라고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겠는가. 경찰에서 올라오는 사건을 법원으로 실어나르기 바쁘다는 뜻이다. 변호사도 다를 것이 없다. 사건 진행사항이 궁금해서 찾아가면 의뢰인을 상대해주는 사람은 사무장 뿐이다. 변호사는 빠서 만나줄 수 없다는 것이다.
창구직원은 적은데 민원인이 많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는 뻔한 일이다. 우리 법조문화가 이런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법조인력 부족 때문이다. 얼마전 문흥수 부장판사는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우리나라 대법관 한 사람이 1년에 주심으로서 처리하는 사건만 1,000건이 넘고, 합의사건까지 합치면 4,000건이 넘는다는 통계를 들어 대법관들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는지를 전해주었다.
그는 『선진국 법조인들이 이 사정을 알면 기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급법원은 더 심하다. 98년 우리나라 법원에 접수된 각종 사건은 756만 7,281건으로, 일선판사 한 사람당 6,147건씩 처리했다. 이중 민·형사 소송같은 본안사건만 158만 3,245건. 일인당 1,286건을 처리했으니 매일 4건정도씩 재판을 한 셈이다.
검사 한 사람의 조사인원은 연평균 3,896명. 한 사건 조사 대상자를 3.8명이라고 보면 연간 1,000건 이상 처리한 셈으로, 법관의 본안사건 처리율에 버금간다. 서울지검에 직무연수차 왔던 일본 검사가 이 사정을 알고 『한국검사는 신이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정이 이러니 신속하고 공정한 사건처리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만하지 않은가.
최종영 새 대법원장은 며칠전 취임 회견에서 『변호사 생활 1년동안 법관들이 업무폭주로 심리에 소홀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면서 법관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 모두가 외치는 법조인원 증원반대 구호에 익숙했던 국민의 귀가 번쩍 뜨일 말이었다. 문제는 얼마나 늘릴 것인가이다. 지난 1년동안 법관들의 사건처리는 129% 늘어났다. 그만큼 법관을 늘려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사법시험 합격자를 2,000-3,0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변호사를 늘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법관과 검사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 억울한 재판과 수사의 피해를 줄여보자는 뜻이다. 재판과 수사에 불만이 없으면 변호사 찾을 일도 없어진다. 정치적 중립과 청렴성 도덕성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법조인력 대폭증원이 사법개혁의 제1 과제임을 법조인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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