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5대재벌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는 「계열사의 조직적 개입을 통한 총수 지배권 상속」과 「여전한 재벌 금융사의 사금고(私金庫)화」라는 재벌체제의 고질적 문제점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줬다.재벌은 내부거래로 한계 계열사를 지원, 선단식 경영체제를 꾸려나가는데 머물지 않고 총수의 부와 지배권을 세습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또 계열 금융기관들이 투자자의 자금을 동원, 그룹내 「자금파이프」 역할을 했다.
특히 이번 조사의 대상시기가 98년6월~99년4월인 점으로 미뤄볼 때 재벌들의 구조조정 이면에는 대규모 부당내부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변칙증여 통한 지배권 상속 삼성SDS(비상장)는 지난 2월 신주인수권부사채(BW) 230억원어치(321만7,000주)를 주당 7,150원 조건에 SK증권을 통해 발행했고 SK증권은 이를 삼성증권에 매도했다. BW란 일정가격(주당 7,150원)에 발행회사의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채권. 삼성증권은 이중 149억원어치를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자녀 4명(재용 부진 서현 윤형)에게, 81억원어치를 구조조정본부 임원 2명에게 매각했다.
그러나 당시 삼성SDS 주식의 장외거래가격(주당 5만4,750원)을 감안하면 이들은 1,500억원의 차익, 자녀 4명만 1,000억원의 차익을 얻은 셈이다. 더욱이 이들이 지금 주식을 인수할 경우(현재 삼성SDS의 주식가격은 주당 15만원) 모두 4,500억원, 자녀 4명은 2,700억원의 차익을 얻게 된다. 이 경우 자녀 4명의 삼성SDS 지분율은 14.8%에서 25.4%로 늘어나게 된다.
◆계열 금융사는 재벌의 사금고 현대투신운용은 98년3월~99년2월 3년간 적자를 보인 현대투신증권에 어음할인과 콜론 제공을 통해 2조4,770억원 상당을 저리대출했다. 시장실세금리보다 어음할인은 0.7~8.26%포인트, 콜론은 1.37~2.76%포인트 낮은 이자률이다. 결국 금리 차이만큼 계열사들은 이익을 봤겠지만 현대투신운용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피해를 본 것이다.
◆계열분리 회사에도 부당지원 계열분리 회사에 대한 공공연한 부당지원이 확인됨에 따라 형식적인 계열사 축소가 큰 의미가 없음이 드러났다. 현대전자는 작년 1~5월 계열분리한 친족독립경영회사 금강㈜이 발행한 기업어음 1,942억원어치를 정상금리보다 6.55~24.96% 낮은 할인율로 매입해줬다.
◆지능화한 지원수법 작년 1,2차 조사 때만해도 계열사간 기업어음(CP)을 고가로 매입해주는 등의 단순한 지원방식에서 지금은 역외펀드나 은행 등을 통한 수법이 등장했다. 삼성생명은 97년말~98년초 4개은행의 후순위채권 1,930억원을 매입, 이들 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부실계열사 발행 회사채를 인수하도록 했다. 또 현대중공업은 현대증권이 말레이시아에 설정한 역외펀드(제3국에 조성된 투자용 기금)의 주식연계형채권을 고가로 매입, 역외펀드가 이 자금으로 국내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도록 해 모두 235억원의 부당지원을 해줬다.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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