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제대로 서기도 전에 한국경제를 쓰러뜨릴 수 있는 돌부리들이 여기저기 산적해있는데도 정부의 경제진단은 낙관론 일색이다. 정부 입으로 「위기」란 말을 할 수는 없어도,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정책을 짜야하는 것이 정책당국의 기본임무이고 바로 2년전 대책없는 낙관론 때문에 끔찍한 외환위기를 겪었는데도 현재 경제당국내에선 그런 긴장감조차 찾기 어렵다.유가가 급등하고, 금리가 폭등하고, 대외신뢰도 조차 동요를 일으키는데도 정부당국자들은 『경제가 안정적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대우사태는 매우 원만하고 빠르게 처리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경제팀의 「펀더맨틀론」(한국경제는 기초가 튼튼해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처럼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없다)을 다시 보는 듯 하다.
「긴장감 부재」는 늘 정책이 「한 템포」씩 늦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우사태이후 거의 일주일 단위로 발표된 금융시장 안정대책 및 환매대책들이 그 대표적 예다. 이미 오래전부터 파국적 결과가 예상됐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가 문제가 불거진 후에야 규제법규를 만들고, 일제단속을 벌인 「파이낸스 대책」도 같은 맥락이다.
「정책의 조각(piecemeal)화」도 큰 문제다. 예컨대 유가상승에 따른 전기료인상 문제를 놓고 산업자원부는 『예정대로 내달부터 전기료를 인상키로 부처간 합의가 끝났다』고 말하고, 재경부는 『부처간 합의된 것은 전혀 없으며 전기료 인상은 당분간 어렵다』고 반박하는 모습이 거의 매일 연출되고 있다. 부처간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조정하고 정책의 큰 그릇에 담는 기능이 취약하다 보니 현안에 대한 종합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행태가 「환란」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금융시장 불안의 핵인 투신권 구조조정은 뒤로 미루고, 채권시가평가까지 유보하는 것을 보면 문제를 부딪쳐 해결하기 보다는 눈앞의 파장을 피하려는 구태가 재연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박사도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유가문제도, 물가불안도 아닌 정책당국의 불확실성』이라며 『현안을 원칙대로 정면돌파해 경제주체들에게 예측가능성을 주는 것만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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