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문학동네 발행)빨랫줄에 흰 셔츠가 걸려있다. 핏자국이 선명한 채 낡아가는, 그것은 형의 셔츠다. 살해당한 형의 복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걷히지 않는다. 형의 복수를 수행할 사람으로는 동생이 지목되었다. 그가 복수에 성공한다면, 빨래는 걷힐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자신이 죽은 사람의 가문에 의해 다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엔 그의 피묻은 셔츠가 빨랫줄에 걸릴 것이다.
동생은 셔츠를 본다. 셔츠는 펄럭거리며 그 속에 담겨 있었을 육체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형이면서 또한 자신이다. 복수는 하나의 숙명이며 도망갈 길은 없다. 온 가족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동생을 힐난과 질책의 눈길로 다스리고 동생은 죄책감에 떤다. 셔츠, 복수, 피, 그 모두를 강력하게 얽어매는 알바니아 산악지방의 관습법 「카눈」. 그것은 그 지방 사람들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그들은 카눈 속에서 태어나고 카눈 속에서 죽는다. 카눈은 어쩌면 운명이나 신의 다른 이름일 지 모른다. 우리는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어느 날, 암살자처럼 찾아올 죽음을 만난다.
이 책을 읽다가 집어든 미당의 시집 속에서 나는 아주 비슷한 세계를 목도한다. 미당의 「이조백자를 보며」라는 짧은 시는 이렇다. 「이조백자의 밥그릇을 보고 있다가/ 마당 귀의 빨랫줄에 널어둔 빨래_내 바지 저고리의 하이얀 빨래를/ 인제는 영원히 걷어들이지 말까 한다/ 육이오 사변 때 북으로 납치되어 간/ 내 형같이 생겨먹은 빨래_/ 다시 못 올 형같이 매어달린 빨래를/ 인제는 그대로 놓아두어 버릴까 한다」
백자와 빨래, 육이오와 형으로 이어지는 미당의 연상이 이스마일 카다레의 카눈과 만날 때, 나는 두렵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김영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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