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조용하고 얌전하다. 차근차근 이야기하다가 수줍어 얼굴도 붉힌다. 하지만 막상 방송에 들어가면 돌변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수다도 떨고 정열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끈다. 큐사인이 들어오면 휴화산이 활화산이 된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진행자 정은아(34)다.『언어구사나 MC로서의 기본이 가장 탄탄한 진행자』(이계진) 『수다를 떨어도 예쁜 MC』(임성훈) 『후배지만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진행을 잘하는 MC』(이금희). 그녀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거나, 곁에서 보아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추켜 세우는데 인색하지 않다.
정은아의 최근 일정. 19일 MBC 「칭찬합시다」와 「21세기위원회」 녹화에 이어 20일 SBS 「머리가 좋아지는 TV」, 21일 SBS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 촬영. 연일 강행군이다. 그래도 정은아는 지친 기색이 없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아서 그러나 봐요. 방송이 제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지요』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운이 좋은 진행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 해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끈기와 노력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90년 KBS 입사 3개월 만의 신출내기 아나운서가 간판 프로 「생방송, 전국은 지금」을 맡았다. 『후배들이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놀리는 것처럼 대학(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을 졸업하고 3년 동안 KBS 입사시험을 봤지요. 두 번 떨어졌지요. 차가운 겨울날 여의도를 거닐면서 백번 떨어져도 꼭 방송사에 들어가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이같은 악바리 근성이 있었기에 신출내기가 대형 프로를 그것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를 무난히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정은아는 KBS 주요 프로와 인기 교양 프로를 도맡아 진행한 유일한 MC였다. 요즘도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은 「아침마당」을 7년간 진행했고, 방송 쇼로는 폭넓은 사랑을 받은 「열린 음악회」, 대선 후보들을 초청한 「국민과의 대화」까지.
『공동 진행하는 MC들의 장점을 많이 보고 배우려고 합니다. 임성훈씨의 변함없는 성실, 이상벽씨의 말을 풀어내는 솜씨, 허수경씨의 재기발랄 등을 많이 배웠지요』
그녀가 평가받는 부분은 보조 MC 차원에 머물던 여성진행자를 명실상부한 공동 진행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여성 MC들은 90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 진행자의 말을 거드는 보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독 진행은 물론 남자 MC와 공동으로 진행할 때도 뛰어난 솜씨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97년 프리랜서를 선언한 것도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다.
딱 한번의 방송사고. 『「생방송 전국은 지금」 진행을 마지막으로 할 때 긴장이 풀렸나봐요. 방송 5분 전에 도착했어요. 그 순간 바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화장을 하고 들어가느냐 고민했는데 화장을 했어요. 결국 방송시작 5분 후에 들어갔지요』
그녀늘 보고 있노라면 참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때 만나 7년 열애 끝에 92년 결혼한 회사원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남편이 이해를 많이 해줘 폭 넓은 활동이 가능하지요. 집안 일은 남편과 나누어서 해요. 시어른들에게 잘 해드리지 못해서 늘 죄송하지요』
인터뷰를 끝내며 하는 말. 『신문 독자가 기자 이름은 몰라도 유명 기사는 기억하듯, 저도 이름보다는 제가 맡은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진행자가 되는 게 바람입니다』
◇주요 진행 프로그램
90년 「생방송, 전국은 지금」(KBS TV)
91년 「아침마당」(KBS TV·7년간 진행·95년 방송대상 MC부문 수상)
92년 「이택림 정은아의 희망가요」(KBS 라디오)
93년 「KBS연주회」(KBS TV)
94년 「열린 음악회」(KBS TV)
95년 「가족회의, 있잖아요 아빠」(KBS TV)
96년 「국악 풍류마당」(KBS TV)
97년 「쇼 미시공화국」(동아 TV)
98년 「시청자 세상」(SBS TV)
「음악캠프」(MBC TV)
「21세기위원회(MBC TV·진행중)
99년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SBS TV·진행중)
「머리가 좋아지는 TV」(SBS TV·진행중)
「칭찬합시다」(MBC·진행중)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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