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란 좋은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주부들에게 명절은 어쩌면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주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향후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명절이기도 하다.이런 의미에서 이번 추석은 특히 경제정책 담당자들에게 각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올들어 지금까지 추진됐던 경제정책중 상당수가 기조적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거나, 정책 타이밍을 놓치거나, 혹은 추진과정에서 좌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기조적으로 방향감각의 오류를 범한 대표적 사례가 맹목적인 저금리정책이었다. 올해초부터 경제전망 전문가들은 「재고투자」라는 요인 하나만 감안해도 경제성장이 약 4% 가까이 나온다는데 암묵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인 저금리는 추가적인 경기부양이라는 과실보다는 금융시장의 교란이라는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컸다. 실제로 현재 만인의 골칫거리인 투신사의 부실은 상당 부분 그동안의 인위적 저금리정책에 기인한 바 크다. 이제 금리가 예정된 섭리(?)에 따라 서서히 상승하면서 정책당국자들은 붕괴하는 금융시장을 지탱하기 위해 온갖 땜질과 무리수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금리를 올릴 수도 없게 되었으니 한 마디로 안쓰러울 뿐이다.
정책타이밍을 놓친 대표적 사례는 자타가 공인하듯이 대우사태이다. 정책당국은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가지고, 조금 더 확실하게 경영진을 압박하면서 일사불란한 지휘하에 외과수술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대우문제는 작은 공로는 서로 다투면서도 정작 큰 책임은 회피하는 고위관료들간의 고질적인 경쟁과 견제때문에 천시(天時)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고위관료들을 통할하고, 시장을 설득하면서 손실분담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나갈만한 시스템이나 인물은 보이지 않고 있다. 자꾸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하는 방정맞은(?) 생각만이 오락가락 한다. 개혁정책이 추진과정에세 좌초한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난 제2차 정부조직개편 작업을 필두로 하여 최근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에 이르기까지 당초의 기대와 초라한 현실 사이의 괴리는 족히 바다를 메울 만하다.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열심히 개혁안을 만들면 정부당국자들이 야금야금 개혁안을 후퇴시키거나 덜컥 선심쓰듯 기득권세력에게 양보해버리는 현실이다. 정말 누구를 위한 관료들인가. 올해 마지막 남은 개혁과제라고 볼 수 있는 제조물배상책임법도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은 채 이 상태로 내버려두면 어떤 모습으로 국회를 통과할지 걱정이다.
왜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렸을까. 물론 혹자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흔히 보이는 「2년생 징크스」라고 가볍게 치부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처음이라 조금 무리를 해서 올해에 그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인데, 내년이면 또 씻은 듯이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한두 번의 실패를 너그럽게 용서할 만큼 한가한 상태에 있지 않다. 단기적인 위기관리정책과 본질적인 해결책을 세심하게 병행해도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이 간단치 않은 형국이다. 정말 피로가 문제라면 시장이 열리지 않아 정책에 대한 숙제검사를 받지 않는 이번 연휴동안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능력이 문제라면 요새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결단」이라는 말의 참뜻을 연휴동안에 차분히 반추할 필요가 있다./전성인 홍익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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