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똘레랑스」라는 프랑스 말이 공감을 얻고 있다. 직역하자면 「관용(寬容)」인데, 사회적 의미로는 「자기와 다른 생각에 대한 인정과 포용」을 뜻하고 있다. 특히 극우세력의 맹동에 따른 사상적 황폐함을 경험한 입장에서 보자면 그 의미가 절실하다.그렇다면 과연 좌파는 우파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똘레랑스가 있는가? 또한 젊은 세대는 앞선 세대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똘레랑스가 있는가? 그리고 똘레랑스의 바탕 위에서 실내용으로 경쟁하여 사람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의문 때문에, 386칼럼을 쓰는 나는 실지로 486론자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한다면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사고의 균형 위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같고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준비해가야 할지도 알 듯 하다. 앞으로 차근차근 노력해 간다면 불혹(不惑)의 나이 쯤에는 사회에 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최근 앞선 세대에 비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진출 움직임이 활발하다. 나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한다면 과연 정책적·사상적으로 충분한 자기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 따른다.
국민은 정치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충분한 자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급한 움직임은 국민들에게 또 한 번의 실망을 안겨 줄 뿐더러 젊은이들의 「정치 로터리클럽」으로 흘러 갈 뿐이다.
삼국지에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가 나온다. 우리는 이 고사를 지도자가 큰 일꾼을 얻기 위해 몸 낮춤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를 반대 측면에서 본다면 객관적으로 충분한 자기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내가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문하며 삼가고 또 삼가는 겸손함을 발견하게 된다./오경훈·86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국회의원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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