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당초 이달말께로 예정됐던 대북 경제제재 완화의 발표를 이르면 이번 주말께 단행하려는 등 대북 유화 제스처가 가속도를 내고있다.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의 타결과 페리보고서 공개를 기점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북미관계는 이제 「제재완화→미사일회담재개→관계정상화를 위한 고위급회담」으로 이어지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베를린 회담에서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유보를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음에도 미국이 이처럼 「선(先)화해조치」를 내놓은 것은 보다 조속한 대북 제재완화를 요구한 페리보고서에 힘입은 바 크다. 이왕 유인책을 줄 바에야 신속을 기하는 것이 북한의 적절한 대응을 촉구하는 메시지의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특히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실리획득을 외교전술로 삼고 있는 김계관(金桂寬) 외무성 부상 등 북한내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포용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숱한 난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대북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는 하원의 벤저민 길먼 국제관계위원장(공화·뉴욕)은 페리 조정관으로부터 보고서 내용을 설명받은뒤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을 제고시킬지 여부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는 어떠한 제재도 해제되어서는 안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북정책에 관해서 공화당을 대표하고 있는 길먼 위원장의 이런 입장은 이미 예상됐던 것이지만 그 수위가 상당해 앞으로 행정부의 의회 협의과정이 순탄치않을 전망이다.
길먼 위원장은 또 이날 『북한의 미사일 시험중지라는 단기적인 양보에 대한 대가로 내준 제재해제가 북한에는 장기적인 이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 관계자등은 『길먼 위원장등 공화당의 대북 강경파들은 자신들이 지난달 23일 「대북문제 자문그룹」을 결성해 조만간 대북정책 보고서를 내겠다고 하자 페리조정관이 서둘러 보고서를 낸 것으로 보고 기분이 상해있다』며 『이르면 이달말께 펴낼 이들의 보고서가 어떤 수준을 담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의회의 반발 분위기가 행정부의 대북 제재완화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이번에 풀어주는 내용 모두가 의회의 승인이 없어도 되는 행정부의 재량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제공하는 중유예산과 관련, 공화당이 예산 심의과정에서 시비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밖에 대선국면으로 접어든 미 정가의 분위기도 변수다. 한 소식통은 『미국의 성의표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에 상응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대북문제가 대선의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며 『이 경우 자칫 포용정책의 기조가 강경론쪽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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